2009년 10월 7일
2009년 9월 3일
2009년 8월 28일
배씨 이야기
배씨의 시조는 지타(紙陀)로 나타난다.경주출생인 지타는 촌장들을 모아 박혁거세를 신라초대왕으로 만들었다. 이에 지타는 총재태사에 오른후 배씨의 성을 받게된다. 하지만 이후 세경주배씨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왕건과 함께 후삼국을 통일해 고려를 건국한 현경이 중시조로 경주배씨의 후손들이 이어지고 있다. 고려개국 일등공신인 현경은 정일품벼슬인 문하시중에 오르면서 경주배씨는 중흥기를 누렸다.
이후 현경의 6대손 삼형제가 각각 분성파(원룡), 성산파(천용), 달성파(용운)로 나뉘어 분성배씨, 성산배씨, 달성배씨로 불리고 있으나 한핏줄이 분명해 경주배씨로 통합해 불리우고 있다.
이후 흥해파와 권산파도 분류해 다섯파로 보기도 한다.삼형제의 맏형인 원룡은 분성파의 파조가 된다.원룡은 고려조에 정3품벼슬인 병부상서에 올라 분성군으로 임명됐다. 분성은 현재 김해의 옛지명으로 김해배씨로 불리우기도 한다.
원료의 6대손인 극수(克壽)는 태종때 광주부윤(현재 시장), 제주목사를 지낸후 고향을 떠나 강진군 군등면 평덕마을에 생활을 시작한다.극수는 경주배씨에서 가장먼저 강진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난다.
극수의 후손들은 호례의 5명의 아들을 기준으로 각각 나뉘게 된다.세원의 후손들은 성전면 수양리에 20여가구가 생활하고 있고 세형의 후손들은 강진읍 동성리 일대에 10여가구가 살고있다. 또한 세정의 후손들이 완도군 고금면 가교리에 20여가구, 세언의 후손들은 해남읍 북평리에 10여가구가 터를 잡고있다.군동면 평덕마을에는 문중정각인 송헌재(松軒齎)가 놓여있다. 강진에서 처음생활을 시작한 극수의 호를 따서 만든 송헌재에는 매년 양력 5월5일 후손들이 모여서 제사를지내고 있다.원래 매년 음력 10월15일 제사를 지냈으나 외지의 후손들의 적극적인 행사참여를 위해 제삿날을 변경 한 것이다.평덕마을에는 경주 배씨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을입구에 위치한 두개의 바위인 군노암. 당시 유명한 풍수인 이신이 이곳을 지나다 바위를 제거하면 후손들이 더욱 번창할것이라고 말했다.이에 후손들은 한쪽 바위를 없애고 나자 그속에서는 파랭새 두 마리가 나와서 도암면 남창방향과 강진읍 목리방향으로 라라갔다고 한다. 이후 후손들에게 좋지않은일들이 생겨나자 후손 응철이 바위를 다시 복원해 현재의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다.
성산파는 둘째인 천룡을 파조로 한다. 성산파는 다른 성씨들에 비해 가장 많은 후손들이 번성했다. 시조인 지타는 신라개국을 도왔고 중시조 현경은 고려, 후손 극겸은 조선개국에 공신으로 자리했다. 극겸은 고려말 정국이 혼란하고 민심이 흐트러지자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했고 종일품인 벼슬인 숭록대부까지 올랐다.이후 후소닌 일학이 정5품 사조정락을 지낸후 완도 고금에서 생활을 시작했고 일학의 증손자인 진채가 칠량면 영동마을로 이주해 강진생활을 시작하게된다.진채의 아들 경용은 성균진사를 지냈고 세명의 아들을 두었다. 응규, 환규, 성규 삼형제는 효성이 지극하기로 유명했다. 삼현제는 헌종때(1840년) 부모가 한겨울에 열병을 앓자 각자 다리에 상처를 내 부모에게 피를 입에 넣어 위기를 넘겼다. 여기에 성산파에는 열녀도 빼놓을수없다. 성규의 처 창녕성씨는 삼년간 남편 병수발을 믿았고 남편이 죽은후 기일에 맞춰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고종(1874년)이 성산파에 삼강문을 내렸다.삼강문은 충, 효, 예가 모두 갖춰진 집안에 하사하는 것으로 현재 완도군 고금면 농상리에 소재하고 있다.
셋째아들 용운을 파조로 하는 달성파. 용운은 정이품벼슬인 평장사를 지낸후 달성군에 임명됐다. 이에 후손들은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가문을 지키고 나라가 어려울때 애국활동에 많은 활동을 보인다. 나주,영암등에 후손들이 기거하다 성종이 강진읍 월남마을에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후손들이 이어지고 있다.
배씨의 역사(歷史)
배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성씨의 하나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성씨의 연원은 신라시대 왕족인 박석김(朴昔金)의 3성(三姓)을 비롯하여 귀족층인 6성(六姓) 배(裵), 이(李), 최(崔), 정(鄭), 손(孫), 설(薛)이 시원(始源)이다. 신라, 고려, 조선에 걸쳐 3조원훈을 가진 성은 우리 배씨가 유일한 것이다. 삼조원훈은 신라 건국에 원훈이신 문양공(文讓公) 휘(諱) 지타( ), 고려 개국 원훈이신 무열공(武烈公) 현경(玄慶), 정절공(貞節公) 휘(諱) 극렴(克廉)으로, 극렴공께서는 이성계를 도와 시들어 가는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민생을 도탄에서 구하니 개국1등에 서훈(敍勳)되고 성산백(星山伯)에 봉작되었으며 첫 영의정이 되니 세 분은 세 왕조 건국에 원훈으로 모두 수상으로서 국가의 기반을 다졌다.
우리 성씨는 모두 무열공을 중시조로 하는 경주배씨의 갈래로서 같은 세계(世系)를 가졌다.

우리 성씨는 고려에 자주호국을 위해 항몽하신 민족적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삼별초(三別抄)의 지휘관 배중손(裵仲孫) 장군, 합단(哈丹)의 침입을 격퇴한 배정지(裵廷芝), 왜구와 싸워 혁혁한 전과를 낸 배구(裵矩), 배언(裵彦), 배극렴(裵克廉)의 활약 또한 빛난다. 또한 주장으로서 여진족 방어와 건주위(建州衛) 정벌(1467년)에 공을 세운 곤산군 배맹달(裵孟達), 임진왜란 때 항왜 호국하신 훙양 현감으로 이순신 장군을 보좌한 배흥립(裵興立), 경상도 유격장 배경남(裵景男), 의병장 배대유 등이 계신다.
우리 성씨는 절의(節義)와 학문에 있어서도 훌륭한 빛을 남겼다.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대해 분통함에 못 이겨 두문동에 들어가 세상을 등진 배문우(裵文祐), 배상지(裵尙志),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지킨 배을서(裵乙瑞)가 있다. 학문에도 우리 배씨는 태종때 배환, 배남, 배강의 삼형제가 문과에 오른 것을 비롯하여 45명의 합격자를 내었다. 그중 퇴계 제자인 임연재 배삼익, 모정 배대유, 남명 제자인 낙천 배신과 등암 배상룡, 금역당 배용길, 사계 제자인 농아 배승조, 안촌 배응경, 화당 배상유, 괴담 배상열 등을 배출함으로써 문무에 빛나니 한국에서도 유수한 성씨의 하나이다.
2009년 8월 13일
창공을 나는 아름다움, 전통 연(鳶)

http://ssairen.tistory.com/43?srchid=BR1http%3A%2F%2Fssairen.tistory.com%2F43
창공을 나는 아름다움, 전통 연(鳶)
한국 연의 역사를 문헌에서 살펴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1,300여 년 전 신라 진덕여왕 원년인 647년에 비담(琵曇)과 염종(廉宗)의 반란 시 김유신 장군이 연을 사용했다는 기록이『三國史記列傳』이 최초로 문헌에 나타나는 연의 역사다. 이후 고려 말엽(西紀 1374年) 최영 장군이 탐라국 평정 시 군사를 연에 매달아 병선(兵船)에 띄워 절벽 위에 상륙시켰으며, 불덩이를 매단 연을 적의 성안으로 날려 보내 불타게 하여 공략하였다는 기록이 『東國歲時記』에 적혀있다.
조선조에는 세종대왕(西紀 1455年) 때 남이 장군이 강화도에서 연을 즐겨 날렸다는 기록과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섬과 육지를 연락하는 통신수단의 방편으로 연을 이용했다는 사람들의 구전 기록 등이 전해진다. 특히 영조대왕은 연날리기를 좋아하여 즐겨 구경하고 장려하여 1725년~1726년 무렵에는 우리나라에 연날리기가 널리 민중에 보급되어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1954년 민족정신을 계승하자는 뜻에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연날리기를 장려하여 당시 공보부에서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연 제작 기능보유자들을 수소문하여 연날리기 대회를 광복 후 처음으로 열게 되었으며, 그 후 1956년 한국일보사 주최로 제1회 전국연날리기 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어 이승만 전 대통령도 매년 대회장에 나와 관전도 하고, 연도 날리며 연에 대한 많은 관심을 나타내었다. 이때부터 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고조되어 연을 수집, 제작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이렇게 오랜 옛날부터 전승되어 오는 민족 전래의 연날리기는 연줄을 한없이 풀어내는 이유도 주위에 장애물이 없는 청계천변(서울), 개울가, 동산(시골)에서 많이 날렸는데 그 시기는 음력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대보름까지가 본격적이며 특히 대보름 며칠 전에는 구경꾼들의 성원과 열기가 절정에 달해 장관을 이루었다.
연날리기는 정월 대보름 며칠 전에 큰 성황을 이루지만 대보름이 지나면 날리지 않는 것이 본래의 풍속이다. 대보름이 되면 ‘액연 띄운다' 하여 연에다 ’액(厄)‘자를 쓰기도 하고 ’送厄‘이나 ’送厄迎福‘이라고 써서 얼레에 감겨있던 실을 모두 풀어 멀리 날려 보낸다. 이것을 '액연 띄운다', 혹은 '액연 날린다'라고 하였다. 한국의 연은 기록에 의하면 원래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점차 연날리기를 놀이로 삼게 되었고, 그것이 민속과 결합되어 조선 시대에 들어와 연을 날리는 시기가 섣달부터 정월 보름 사이로 고정되었다. 이는 한국의 농경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농경기에 연날리기를 하면 농사에 지장을 줄 것으로 보고, 농한기인 음력 12월부터 연을 날리기 시작하였다고 전해진다. 즉, 정월 보름날 액막이의 민속과 관련시켜 연을 날려 보냄으로써 연날리기를 끝내고, 다시 농사 준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강변 등 넓은 공간과 알맞은 바람(초속 3~5m)만 있으면 연중 어느 때라도 연을 날리는 새로운 풍속도가 그려지고 있다.
민속연 기능보유자 노유상 옹은 1993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호 한국민속연의 보유자로 지정되어 한국정통연의 맥을 잇고 있다. 올해 104세인 노유상 옹이 본격적으로 연에 관심을 갖고 제대로 연을 만들어 날리게 된 것은 15살 무렵 박근석(朴根錫) 씨를 만나면서부터인데, 그때 연 만드는 기술뿐만 아니라 날리는 기술, 얼레(연자세) 만드는 기술, 연줄에 사기를 먹이는 기술, 상대편의 연줄을 끊는 연싸움 기술 등 연에 대한 대부분의 기술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90년이 넘게 연을 만들고 날려 온 노유상 옹이 지금까지 만든 연은 100여 종에 다다른다. 노유상옹의 연 제작 기능은 아들 노성규씨에게 전수가 되었으나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 현재는 3대를 잇는 노순씨가 민속연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2009년 8월 8일
‘일가견’있는 사람보다는 ‘한가락’하는 사람이 보고 싶다.
호랑이가 풍뎅이 한 마리를 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조물주는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다고 저런 미물 따위를 만드셨을까. 그 말을 들은 풍뎅이가 호랑이에게 빈정거렸다. 제정신이냐. 발도 두 개나 모자라고 날개조차도 없는 장애자 주제에. -이외수님의 트윗터에서-
상대방의 약점을 캐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를 알아야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아마도 우리네 교육이 남을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기에 나만의 노하우 즉 일가견을 지녀야 잘 살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어떤 분야에 이른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을 보통 마니아나 전문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매진하는 마니아와 한 분야의 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 전문가도 좋지만, 다른 사람의 잘못만을 들쑤시고 다니는 특기는 좀 아니다 싶다.
그런데 일가견이란 이 말은 일본에서 왔단다. 본래 일본말이 최근에 우리 사전에 오른 거란다. 아마도 사람들이 많이 쓰니까 우리말 사전에도 오른 것 같은데, 이 말은 일본말로 “독특한 주장이나 학설”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조금 더 그 의미를 명확히 해보면, ‘어느 한 방면, 어떤 문제에 대해 갖춘 일정한 체계의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자기만의 독특한 주장이나 학설 또는 그 견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一家見’이라 쓰고 ‘いちけんしき[이찌갱시끼]’라고 읽는다고 한다.
때문에 ‘일가견’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보다는 자기 자신의 주장에 더 의미를 두는 말이 되겠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화두 중 ‘소통’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호랑이 입장에서 보면 풍뎅이가 잘못된 것이고, 풍뎅이 입장에서 보면 호랑이가 날개도 없는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일가견은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다. 때문에 나와 다른 것은 무언가 모자란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다르다.’란 표현보다는 ‘나와 틀리다.’라는 단정적인 표현을 더 많이 쓰고 있지 않는가. ‘오른손’이라는 말 보다는 ‘바른손’이란 말을 써서 ‘왼손잡이’에게 손가락 짓을 하고 있지 않는가. 여자가 출세하면 그냥 ‘변호사’가 아니라 ‘여류변호사’, ‘여류작가’로 구분을 짓지 않는가.
그런데 이와 비슷한 우리말에 ‘한가락’이 있다. 한가락이란 뜻은 ‘1)노래나 소리의 한 곡조. 2) 어떤 방면에서 썩 훌륭한 재주나 솜씨’라고 한다. 음악이란 여러 가지 각기 다른 소리가 하나 되어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연극에서는 한 배우가 대사를 할 때는 다른 배우는 조용히 있어야 하지만, 오페라에서는 모두가 대사를 해도 아름답게 들리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나만의 한가락을 하는 것이다. 물론 나만의 한가락이 ‘일가견’이 되어 자기만의, 자기를 위한 독특한 가락이 돼버리면 오페라든 합창이든 그 음악을 망치게 될 것이지만, 나의 한가락을 잘 해낼 때 우리는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는 가정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멜로디에 한가락을 담당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임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멜로디에 한가락을 맡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선율의 한가락을 책임진 사람들이다. 오늘 음악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보다는 내가 맡은 분야에 한가락을 담당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그립다.
상대방의 약점을 캐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를 알아야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아마도 우리네 교육이 남을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기에 나만의 노하우 즉 일가견을 지녀야 잘 살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어떤 분야에 이른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을 보통 마니아나 전문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매진하는 마니아와 한 분야의 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 전문가도 좋지만, 다른 사람의 잘못만을 들쑤시고 다니는 특기는 좀 아니다 싶다.
그런데 일가견이란 이 말은 일본에서 왔단다. 본래 일본말이 최근에 우리 사전에 오른 거란다. 아마도 사람들이 많이 쓰니까 우리말 사전에도 오른 것 같은데, 이 말은 일본말로 “독특한 주장이나 학설”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조금 더 그 의미를 명확히 해보면, ‘어느 한 방면, 어떤 문제에 대해 갖춘 일정한 체계의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자기만의 독특한 주장이나 학설 또는 그 견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一家見’이라 쓰고 ‘いちけんしき[이찌갱시끼]’라고 읽는다고 한다.
때문에 ‘일가견’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보다는 자기 자신의 주장에 더 의미를 두는 말이 되겠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화두 중 ‘소통’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호랑이 입장에서 보면 풍뎅이가 잘못된 것이고, 풍뎅이 입장에서 보면 호랑이가 날개도 없는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일가견은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다. 때문에 나와 다른 것은 무언가 모자란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다르다.’란 표현보다는 ‘나와 틀리다.’라는 단정적인 표현을 더 많이 쓰고 있지 않는가. ‘오른손’이라는 말 보다는 ‘바른손’이란 말을 써서 ‘왼손잡이’에게 손가락 짓을 하고 있지 않는가. 여자가 출세하면 그냥 ‘변호사’가 아니라 ‘여류변호사’, ‘여류작가’로 구분을 짓지 않는가.
그런데 이와 비슷한 우리말에 ‘한가락’이 있다. 한가락이란 뜻은 ‘1)노래나 소리의 한 곡조. 2) 어떤 방면에서 썩 훌륭한 재주나 솜씨’라고 한다. 음악이란 여러 가지 각기 다른 소리가 하나 되어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연극에서는 한 배우가 대사를 할 때는 다른 배우는 조용히 있어야 하지만, 오페라에서는 모두가 대사를 해도 아름답게 들리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나만의 한가락을 하는 것이다. 물론 나만의 한가락이 ‘일가견’이 되어 자기만의, 자기를 위한 독특한 가락이 돼버리면 오페라든 합창이든 그 음악을 망치게 될 것이지만, 나의 한가락을 잘 해낼 때 우리는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는 가정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멜로디에 한가락을 담당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임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멜로디에 한가락을 맡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선율의 한가락을 책임진 사람들이다. 오늘 음악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보다는 내가 맡은 분야에 한가락을 담당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그립다.
2009년 8월 7일
맹인모상(盲人摸象)
배안용 목사의 문화놀이터
[맹인모상(盲人摸象)]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은 크거나 만질 수 없는 물건을 어떻게 인식할까? 아마도 그들만의 상상력으로 만든 어떤 것을 막연하게 추측할 것이다. 때문에 앞을 볼 수 있는 사람과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인식하는 대상은 매우 달라질 수 있다.
"코끼리라는 동물은 기둥같이 생겼다", "아니다, 코끼리는 부채같이 생겼다" 코끼리의 다리, 귀 등을 각각 만진 맹인들이 자기가 알고 있는 부분만 가지고 고집하고 다툰다는 뜻이 바로 '맹인모상(盲人摸象)'이다. 그런데 이런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점자판 동물도감이 발간된다고 한다.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관장 송경태)은 국내 최초로 100쪽 분량의 2권짜리 점자판 동물도감을 제작 중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제작되는 점자 동물도감에는 각 쪽마다 동물 100여 종의 전체적인 형태는 물론, 눈과 꼬리 등 세세한 모양까지 점자로 표현된다고 한다. 또한 맞은편 쪽에는 해당 동물의 크기, 주 먹이, 서식 장소, 생활 방식, 수명 등 동물에 대한 각종 설명이 역시 점자로 담기게 된다.
맹인이 아니어서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참 좋다. 무엇이든지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원하는 만큼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큰 축복이다. 볼 수 없다는 것은 매우 불편할뿐더러 또한 매우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볼 수 없는 사람”을 이야기 할 때 “앞을”이라고 굳이 붙여서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뒤는” 볼 수 있단 말인가?
주식이 떨어진다고 하기도 하고, 주식이 오른다고 하기도 한다. 쉽게 우리가 주식 한다고 하는 말은 주식의 값이 떨어진 후 사서, 값이 오른 후에 팔아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그러니 주식을 해서 이익을 남기려면, 지금 값이 떨어진 주식 중 우량주식(앞으로 전망이 밝아 값이 다시 오를 수 있는 주식)을 사서 후에 값이 오르면 팔면 되는 것이다.
코끼리는 어떻게 생겼는가? 코끼리를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코끼리의 모양을 설명하고, 또 코끼리를 봤던 사람은 그 설명을 듣고 금방 코끼리라는 답을 맞출 수 있다. 그렇듯 쉬운 것이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보이는 것에 대한 설명이다.
값이 떨어진 우량주식을 사서 값이 올랐을 때 팔면 많은 이득을 볼텐데, 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주식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왜 사람들은 대부분 주식의 값이 비쌀 때 사서, 값쌀 때 팔아 막대한 손해를 보고 망하는 것일까?
우리도 ‘뒤는’(과거) 볼 수 있지만, ‘앞은’(미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물리적으로 맹인이 아니라 해서 그리 자랑할 만한 것은 못된다. 어차피 앞을 못 보는 것은 피차일반이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나 나서 크게 다치는 사람들은 미리 앞을 볼 수 있었다면 사고가 날 그 차를 타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있다. 누가 제일 재수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버스 사고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다음의 사람 중 누가 가장 재수 없는 사람일까?
1) 지난 정거장에 내려야 하는데 졸다가 한 정거장 더 타고 가다 사고 난 사람.
2) 출발한 버스를 열심히 뛰어서 떠나려는 버스를 기어코 탄 사람.
3) 내려할 정거장은 지났지만 맘에 쏙 드는 이성을 보고 스스로 정거장을 지나친 사람.
4) 마음이 울적해서 버스 타고 정처 없이 가고 있던 사람.
운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운이 좋은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1) 다음 정거장에 내려야 하지만 졸다가 깜짝 놀라 사고 전 정거장에 잘못 내린 사람.
2) 버스 타려고 했는데 물건을 떨어뜨려 못 탄 사람.
3) 버스에 꼭 타야 하지만 맘에 쏙 드는 이성이 무슨 버스를 타나 보려고 안 탄 사람.
4) 버스가 왔지만 멍하니 딴 생각 하다 버스 놓친 사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점자를 통해 손으로 세상을 만날 수 있고, 흰지팡이를 통해 '앞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눈 멀정해도 앞을 보지 못하는 우리에겐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도 미래를 손끝으로 알려주는 무엇인가가 있으면 좋겠다.
킴 웍스는 한국전쟁 때 맹인이 된 한국 고아이다. 그는 어느 미군의 도움으로 미국에 가서 성악가가 되었다. 성악가 킴 웍스가 했던 유명한 말이 있다.
“사람들은 맹인인 저를 인도할 때 100미터 전방에 무엇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바로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뛰라고 말하거나, 계단이 있으니 발을 올려놓으라고 말합니다. 저를 인도하는 분의 말을 믿고 제가 한 걸음씩 발을 옮기면 제가 가려는 목적지에 꼭 도착합니다. 우리는 20년 후, 10년 후를 알지 못합니다. 아니 1분 후도 알지 못합니다. 단지 내 앞에 닥친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할 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보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주변에 동료와 친구와 가족이 있다. 가까운 사람들끼리 서로의 앞을 봐 주면서 조금씩 조금씩 내 앞을 열어가는 것이다. 1분 앞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10년 후, 20년 후를 보지 못한다고 한탄만 하고 있기에는 나를 넘어뜨리는 장애물이 너무 많지 않은가? 빨리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넘어지지 않고 천천히 가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上善若水
最高の善は 水とようだ.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배안용 050-2580-3698
anyba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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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모상(盲人摸象)]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은 크거나 만질 수 없는 물건을 어떻게 인식할까? 아마도 그들만의 상상력으로 만든 어떤 것을 막연하게 추측할 것이다. 때문에 앞을 볼 수 있는 사람과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인식하는 대상은 매우 달라질 수 있다.
"코끼리라는 동물은 기둥같이 생겼다", "아니다, 코끼리는 부채같이 생겼다" 코끼리의 다리, 귀 등을 각각 만진 맹인들이 자기가 알고 있는 부분만 가지고 고집하고 다툰다는 뜻이 바로 '맹인모상(盲人摸象)'이다. 그런데 이런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점자판 동물도감이 발간된다고 한다.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관장 송경태)은 국내 최초로 100쪽 분량의 2권짜리 점자판 동물도감을 제작 중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제작되는 점자 동물도감에는 각 쪽마다 동물 100여 종의 전체적인 형태는 물론, 눈과 꼬리 등 세세한 모양까지 점자로 표현된다고 한다. 또한 맞은편 쪽에는 해당 동물의 크기, 주 먹이, 서식 장소, 생활 방식, 수명 등 동물에 대한 각종 설명이 역시 점자로 담기게 된다.
맹인이 아니어서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참 좋다. 무엇이든지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원하는 만큼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큰 축복이다. 볼 수 없다는 것은 매우 불편할뿐더러 또한 매우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볼 수 없는 사람”을 이야기 할 때 “앞을”이라고 굳이 붙여서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뒤는” 볼 수 있단 말인가?
주식이 떨어진다고 하기도 하고, 주식이 오른다고 하기도 한다. 쉽게 우리가 주식 한다고 하는 말은 주식의 값이 떨어진 후 사서, 값이 오른 후에 팔아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그러니 주식을 해서 이익을 남기려면, 지금 값이 떨어진 주식 중 우량주식(앞으로 전망이 밝아 값이 다시 오를 수 있는 주식)을 사서 후에 값이 오르면 팔면 되는 것이다.
코끼리는 어떻게 생겼는가? 코끼리를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코끼리의 모양을 설명하고, 또 코끼리를 봤던 사람은 그 설명을 듣고 금방 코끼리라는 답을 맞출 수 있다. 그렇듯 쉬운 것이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보이는 것에 대한 설명이다.
값이 떨어진 우량주식을 사서 값이 올랐을 때 팔면 많은 이득을 볼텐데, 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주식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왜 사람들은 대부분 주식의 값이 비쌀 때 사서, 값쌀 때 팔아 막대한 손해를 보고 망하는 것일까?
우리도 ‘뒤는’(과거) 볼 수 있지만, ‘앞은’(미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물리적으로 맹인이 아니라 해서 그리 자랑할 만한 것은 못된다. 어차피 앞을 못 보는 것은 피차일반이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나 나서 크게 다치는 사람들은 미리 앞을 볼 수 있었다면 사고가 날 그 차를 타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있다. 누가 제일 재수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버스 사고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다음의 사람 중 누가 가장 재수 없는 사람일까?
1) 지난 정거장에 내려야 하는데 졸다가 한 정거장 더 타고 가다 사고 난 사람.
2) 출발한 버스를 열심히 뛰어서 떠나려는 버스를 기어코 탄 사람.
3) 내려할 정거장은 지났지만 맘에 쏙 드는 이성을 보고 스스로 정거장을 지나친 사람.
4) 마음이 울적해서 버스 타고 정처 없이 가고 있던 사람.
운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운이 좋은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1) 다음 정거장에 내려야 하지만 졸다가 깜짝 놀라 사고 전 정거장에 잘못 내린 사람.
2) 버스 타려고 했는데 물건을 떨어뜨려 못 탄 사람.
3) 버스에 꼭 타야 하지만 맘에 쏙 드는 이성이 무슨 버스를 타나 보려고 안 탄 사람.
4) 버스가 왔지만 멍하니 딴 생각 하다 버스 놓친 사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점자를 통해 손으로 세상을 만날 수 있고, 흰지팡이를 통해 '앞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눈 멀정해도 앞을 보지 못하는 우리에겐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도 미래를 손끝으로 알려주는 무엇인가가 있으면 좋겠다.
킴 웍스는 한국전쟁 때 맹인이 된 한국 고아이다. 그는 어느 미군의 도움으로 미국에 가서 성악가가 되었다. 성악가 킴 웍스가 했던 유명한 말이 있다.
“사람들은 맹인인 저를 인도할 때 100미터 전방에 무엇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바로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뛰라고 말하거나, 계단이 있으니 발을 올려놓으라고 말합니다. 저를 인도하는 분의 말을 믿고 제가 한 걸음씩 발을 옮기면 제가 가려는 목적지에 꼭 도착합니다. 우리는 20년 후, 10년 후를 알지 못합니다. 아니 1분 후도 알지 못합니다. 단지 내 앞에 닥친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할 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보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주변에 동료와 친구와 가족이 있다. 가까운 사람들끼리 서로의 앞을 봐 주면서 조금씩 조금씩 내 앞을 열어가는 것이다. 1분 앞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10년 후, 20년 후를 보지 못한다고 한탄만 하고 있기에는 나를 넘어뜨리는 장애물이 너무 많지 않은가? 빨리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넘어지지 않고 천천히 가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上善若水
最高の善は 水とようだ.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배안용 050-2580-3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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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1일
KTX 열차에 전용 영화관 생긴다
[연합뉴스 2007-03-11 06:13]
휴대전화 충전기 비치
흡연객실은 설치 검토안해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KTX 고속열차에 세계 최초로 '열차전용 영화관'(KTX시네마)이 설치돼 올 상반기 안에 선보일 전망이다.
11일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철도공사는 최근 정부에 철도서비스 개선방안을 제출하고 KTX를 대상으로 올 상반기 내에 영화객실을 운영해 고객 서비스를 고급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철도공사는 3월 안에 영화객실 프로그램 개발, 차내 설비 개선 등을 통해 시범 열차를 만들고 6월 안에 영화객실을 상용화할 계획이다.
세부 계획을 살펴보면 기존의 일반실과 특실로 구성된 KTX에 영화객실을 1량 정도 추가 편성한 뒤 객차 내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유로로 개봉 영화 등을 상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열차 내 설치된 자체방송과 DMB 등을 즐기는데 그쳤던 고객들은 기존 대형 영화관처럼 편안한 좌석에서 최신 개봉 영화와 팝콘 등을 즐기면서 목적지까지 갈 수 있게됐다.
일단 영화객실은 서울-부산의 경우 2시간이 넘어 개봉 영화 상영이 가능한 상황이며 서울-대전은 50여분 정도라 별도의 최신 프로그램이 운영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철도공사는 지난해 9월 씨네우드엔터테인먼트와 열차개봉관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상황이다.
아울러 KTX 내 휴대전화 충전시설을 비치하고 수유공간을 확대하며 특실에 노트북 이용자를 위한 시설 등을 보강해 영화 관람과 더불어 열차 내에서 육아와 업무 그리고 엔터테인먼트까지 모두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할 방침이다.
하지만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흡연 객실 운영은 최근 국내에서 금연 열풍이 불고 있는 점을 고려해 검토하지 않기로 했다.
건교부 관계자는 "철도공사가 영화배급사와 협력해 영화객실에서 개봉영화를 상영해 수익을 극대화할 방침"이라면서 "아직 영화 관람 가격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일반 극장 수준인 7천원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철도회사도 저가 항공사와 경쟁하려고 현재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영화객실의 경우 철도공사가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올해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 중에 하나다"고 덧붙였다.
president21@yna.co.kr
2007년 2월 12일
충무로의 새로운 탈출구 '가족영화'

'각설탕' '아이스케키' 등 줄줄이 개봉
영화사 가능성에 주목…제작에는 어려움 많아
(서울=연합뉴스) 홍성록 기자 = 최근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가족영화'란 타이틀로 묶을 수 있는 이들 영화는 대부분 '감동'을 콘셉트로 어린이ㆍ동물ㆍ장애인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2002년 400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집으로'를 시작으로 '말아톤'(500만 명) '웰컴 투 동막골'(800만 명) 등의 성공은 이들 영화의 가능성을 밝게 하고 있다.
싸이더스FNHㆍMK픽쳐스ㆍKM컬쳐 등 굴지의 영화사가 제작사로, CJ엔터테인먼트ㆍ쇼박스 등 대표적인 배급사들이 배급에 참여하는 등 가족영화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가족영화 속속 제작ㆍ개봉
현재 가족영화는 10일 선보인 '각설탕'과 함께 '아이스케키' '마음이…' '눈부신 날에' 등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제작 중인 영화로는 11월과 내년 상반기 개봉 예정인 '허브'와 '번트' 등을 꼽을 수 있다.
'아이스케키'는 24일에, '마음이…'는 10월 중순께, '눈부신 날에'는 11월께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말과 여기수(女騎手)와의 사랑과 교감을 다룬 '각설탕'은 싸이더스FNH가 제작하고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하는 영화. 영화 '장화, 홍련'과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통해 스타 반열에 오른 임수정이 주인공 시은을 연기했다.
MK픽쳐스는 '안녕 형아'에 이어 두 번째 가족영화로 박지빈 주연의 '아이스케키'를 내놓았다. '아이스케키'는 미혼모 엄마 밑에서 자란 꼬마 영래(박지빈)가 서울에 산다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아이스케키 장사에 나선다는 내용.
'집으로'의 유승호가 주연한 '마음이…'는 개와 인간의 우정을 다뤘다. "강아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국 영화로는 최초"라고 제작사 화인웍스 측은 밝혔다.
박신양 주연의 '눈부신 날에'는 딸에 대한 양아치 아버지의 부성애를, 정진영 주연의 '번트'는 저능아 아들을 정상인과 함께 살게 하려고 애쓰는 아버지와 그 아들의 이야기를, '허브'는 저능아 딸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각각 다뤘다.
◇가족영화 시장성에 주목
가족영화 제작에 가장 적극적인 영화사는 MK픽쳐스다. 이 영화사는 지난해 박지빈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안녕, 형아'를 통해 가족영화의 가능성을 확인한 뒤 영화사의 주요 영화장르로 가족영화를 포함시켰다. MK픽쳐스는 현재 매년 한 편씩 가족영화를 제작한다는 계획.
심재명 대표는 "한국영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가족영화라는 영역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영화 '여고괴담' 시리즈가 공포영화 시장의 가능성을 보여준
이후 공포영화 시장이 형성된 것처럼, 가족영화도 흥행성이 검증되면 한국영화의 주요장르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번트'를 제작 중인 타이거픽쳐스 이정세 제작이사는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볼 때 가족영화의 관객층은 넓다고 본다"면서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도전하고 싶은 장르"라고 말했다.
MK픽쳐스처럼 매년 한 편 이상의 가족영화를 제작하겠다는 계획은 아직 없지만 싸이더스FNH도 가족영화의 가능성은 높이 사고 있다.
조윤미 기획팀장은 "현재 우리가 제작한 '각설탕'이 '괴물'과 예매순위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면서 "아직 발표한 단계는 아니지만 기획 중인 작품 중에도 가족영화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충무로에서 동물ㆍ장애인ㆍ스포츠 소재의 영화는 통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것이 하나씩 깨지고 있는 것 같아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회사 측에서도 계속 가족영화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음이…' '허브' '번트'의 배급을 맡은 쇼박스는 "액션이나 코미디 영화 이외에도 관객의 다양한 욕구가 존재하고, 그 중 하나가 가족영화라고 보고 있다"면서 "'말아톤' '웰컴 투 동막골' 등의 성공사례를 통해 휴머니즘의 통한 감동이 주는 흥행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 제작ㆍ펀딩ㆍ홍보 등에 어려움 겪어
모든 연령층에 대상으로 한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가족영화는 제작과 펀딩, 홍보 등에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린이가 주인공인 경우, 안정적인 연기를 얻어내기가 힘들고, 동물에게 연기를 시키는 것은 더더욱 어려움이 뒤따르기 때문.
현재 주인공을 맡을 수 있는 아역 연기자도 '아이스케키'의 박지빈, '집으로'의 유승호, '웰컴 투 동막골'의 권오민, '번트'의 최우혁 정도.
심재명 MK픽쳐스 대표는 "성인 연기자와는 달리 아역들에게 원하는 연기를 뽑아내기가 힘들고 아역 연기자들은 정형화된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고, 이정세 타이거픽쳐스 제작이사는 "아역의 연기 지도가 쉽지 않아 일반영화보다 1.5배는 힘들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가족영화의 스타 연기자의 부재는 제작비 마련과 홍보에서도 여전히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충무로에서는 가족영화 히트 사례가 몇 편 더 쌓이면 투자가 좀더 수월해지고 아역배우 저변확대와 연기 지도 및 촬영 노하우 축적 등도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가족영화 제작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sunglok@yna.co.kr
(끝)
2007년 2월 11일
문화사역 장소 문제 한시름 던다…다목적 기독공연장 잇따라 개설
문화사역 장소 문제 한시름 던다…다목적 기독공연장 잇따라 개설
[국민일보 2006-05-28 16:07]
문화 사역자들을 위한 문화 공간이 늘어나고 있다. 이전에 광림교회나 연세중앙교회 등 일부 교회가 기독 문화와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을 마련한 적은 있지만 많은 기독공연들을 다 소화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문화 사역자들이 찾은 곳은 일반 공연장. 비싼 대관료에 대한 부담보다 마음껏 주님을 찬양하며 예배할 수 없다는 것이 늘 문제였다. 하지만 최근 문화 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한 교회들이 문화 공간을 마련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이에 대해 문화사역자들은 “평일 비어있는 공간이나 다름없는 교회가 문화 공간으로 활용됨에 따라 문화 사역자들의 설 자리가 많아졌다”며 “지역주민도 교회를 지역 문화 공간으로 인식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등촌동 다윗의교회(담임목사 김진호)는 CCM사역자들이 마음껏 찬양할 수 있는 ‘찬양하우스 다윗의장막’을 지난 6일 오픈했다. 이 장소는 1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정기적인 찬양집회와 콘서트,각종 세미나,중·고등부 동아리 모임에 활용될 예정이다. 사용료는 무료다.
김진호 목사가 공연장을 마련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CCM사역자로 활동하던 당시 공연 장소의 부족을 늘 아쉬워했기 때문. 특히 목회를 시작하면서 청년들이 교회 안의 한정된 틀에 얽매여 마음껏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계획을 구체화했다. ‘찬양하우스 다윗의 장막’이라는 이름도 옷이 벗겨지는 것도 모를 정도로 찬양한 다윗처럼 청년들도 거침없이 찬양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하자는 뜻에서 지었다. ‘찬양하우스 다윗의장막’은 오픈을 기념해 6월 한달간 ‘자유를 외치라(Shout for Freedom)’라는 제목으로 콘서트를 연다. 매주 토요일 CCM 사역자들의 뜨거운 찬양과 청년 전문 목회자들의 은혜 넘치는 말씀을 만날 수 있다(02-3662-0695).
이승만 박사가 세운 서울교회 본당도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서울교회가 지난 2005년 리모델링 작업을 통해 교인들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까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 ‘샘’을 만든 것. ‘샘’은 연극 영화 콘서트 등을 공연할 수 있는 150평 규모,250석의 객석을 갖춘 소극장이다.
서울교회는 문화공간 ‘샘’ 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26일부터 오는 8월 27일까지 뮤지컬 ‘더 판타스틱스’를 공연한다. ‘더 판타스틱스’는 1960년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공연한 이래 42년간 1만7000회 공연을 기록한 유명 뮤지컬. 장애우와 외국인노동자를 위해 한글과 영어 자막을 제공하고 선교기관이나 어려운 교회 성도들에게선 관람료를 받지 않는다.
극장장 배안용 목사는 “서울교회는 신앙을 증진하고 전파하는 방법으로 문화를 택한 것이 아니고 세상에 봉사하기 위해 문화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02-720-3698).
서울 종로3가 둘로스호텔(대표 강상호)도 지난해 겨울 기독인들을 위해 소극장 ‘둘로스 아노게온’을 마련했다. 객석 180석 규모의 이 공연장은 각종 기독교 공연과 세미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유흥가 밀집 지역의 한 외국인전용 호텔에 문화 사역자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준 사람은 호텔 강상호 대표다. 10년전부터 종로 지역 복음화를 위해 기도한 강 대표는 둘로스호텔 지하를 문화 공간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문화 공연과 함께 ‘둘로스 아노게온’은 매월 첫째주 목요일 ‘꿈이 있는 열린 예배’ 장소로도 사용된다. 지난 5일 첫 예배에 이어 다음달 1일 두 번째 예배가 열린다. 이 극장의 정우용 팀장은 “전문 문화 사역자들보다 교회 청년부 등 아마추어팀들이 공연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02-2266-0955).
1400여 객석을 갖춘 대형 공연장도 생겼다. 서울 명일동 명성교회(김삼환 목사)의 복합문화 공간 ‘월드글로리아센터’다. 이달초 개관 축하예배를 드린 월드글로리아센터는 지하 3층,지상 6층 규모에 대공연장과 소공연장,교육장,스튜디오실 등을 갖춘 다목적 문화공간이다. 다음달 30일 소프라노 신영옥을 초청,개관 기념 콘서트를 여는 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02-440-9000).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국민일보 2006-05-28 16:07]
문화 사역자들을 위한 문화 공간이 늘어나고 있다. 이전에 광림교회나 연세중앙교회 등 일부 교회가 기독 문화와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을 마련한 적은 있지만 많은 기독공연들을 다 소화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문화 사역자들이 찾은 곳은 일반 공연장. 비싼 대관료에 대한 부담보다 마음껏 주님을 찬양하며 예배할 수 없다는 것이 늘 문제였다. 하지만 최근 문화 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한 교회들이 문화 공간을 마련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이에 대해 문화사역자들은 “평일 비어있는 공간이나 다름없는 교회가 문화 공간으로 활용됨에 따라 문화 사역자들의 설 자리가 많아졌다”며 “지역주민도 교회를 지역 문화 공간으로 인식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등촌동 다윗의교회(담임목사 김진호)는 CCM사역자들이 마음껏 찬양할 수 있는 ‘찬양하우스 다윗의장막’을 지난 6일 오픈했다. 이 장소는 1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정기적인 찬양집회와 콘서트,각종 세미나,중·고등부 동아리 모임에 활용될 예정이다. 사용료는 무료다.
김진호 목사가 공연장을 마련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CCM사역자로 활동하던 당시 공연 장소의 부족을 늘 아쉬워했기 때문. 특히 목회를 시작하면서 청년들이 교회 안의 한정된 틀에 얽매여 마음껏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계획을 구체화했다. ‘찬양하우스 다윗의 장막’이라는 이름도 옷이 벗겨지는 것도 모를 정도로 찬양한 다윗처럼 청년들도 거침없이 찬양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하자는 뜻에서 지었다. ‘찬양하우스 다윗의장막’은 오픈을 기념해 6월 한달간 ‘자유를 외치라(Shout for Freedom)’라는 제목으로 콘서트를 연다. 매주 토요일 CCM 사역자들의 뜨거운 찬양과 청년 전문 목회자들의 은혜 넘치는 말씀을 만날 수 있다(02-3662-0695).
이승만 박사가 세운 서울교회 본당도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서울교회가 지난 2005년 리모델링 작업을 통해 교인들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까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 ‘샘’을 만든 것. ‘샘’은 연극 영화 콘서트 등을 공연할 수 있는 150평 규모,250석의 객석을 갖춘 소극장이다.
서울교회는 문화공간 ‘샘’ 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26일부터 오는 8월 27일까지 뮤지컬 ‘더 판타스틱스’를 공연한다. ‘더 판타스틱스’는 1960년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공연한 이래 42년간 1만7000회 공연을 기록한 유명 뮤지컬. 장애우와 외국인노동자를 위해 한글과 영어 자막을 제공하고 선교기관이나 어려운 교회 성도들에게선 관람료를 받지 않는다.
극장장 배안용 목사는 “서울교회는 신앙을 증진하고 전파하는 방법으로 문화를 택한 것이 아니고 세상에 봉사하기 위해 문화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02-720-3698).
서울 종로3가 둘로스호텔(대표 강상호)도 지난해 겨울 기독인들을 위해 소극장 ‘둘로스 아노게온’을 마련했다. 객석 180석 규모의 이 공연장은 각종 기독교 공연과 세미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유흥가 밀집 지역의 한 외국인전용 호텔에 문화 사역자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준 사람은 호텔 강상호 대표다. 10년전부터 종로 지역 복음화를 위해 기도한 강 대표는 둘로스호텔 지하를 문화 공간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문화 공연과 함께 ‘둘로스 아노게온’은 매월 첫째주 목요일 ‘꿈이 있는 열린 예배’ 장소로도 사용된다. 지난 5일 첫 예배에 이어 다음달 1일 두 번째 예배가 열린다. 이 극장의 정우용 팀장은 “전문 문화 사역자들보다 교회 청년부 등 아마추어팀들이 공연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02-2266-0955).
1400여 객석을 갖춘 대형 공연장도 생겼다. 서울 명일동 명성교회(김삼환 목사)의 복합문화 공간 ‘월드글로리아센터’다. 이달초 개관 축하예배를 드린 월드글로리아센터는 지하 3층,지상 6층 규모에 대공연장과 소공연장,교육장,스튜디오실 등을 갖춘 다목적 문화공간이다. 다음달 30일 소프라노 신영옥을 초청,개관 기념 콘서트를 여는 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02-440-9000).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저녁마다 신나는 놀이판
저녁마다 신나는 놀이판 `교회가 들썩들썩` [중앙일보]
서울교회 `괴짜 목사` 배안용씨`예배당을 공연장으로 … 사고 쳤죠`
배안용 목사가 문화공간 '샘' 2층 주조정실에서 무대를 내려다보며 설명하고 있다. 개관작인 '판타스틱스'의 제작비는 2억원가량. 객석이 꽉 차도 손해 본다. 목사는 "수익 내려고 공연하면 일반 극장과 뭐가 다르냐"며 여유만만이다. 김성룡 기자
"한번 대차게 망해 보려구요. 진짜 망하면 어떡하냐구요? 그땐 하늘에 계신 '든든한 백'이 신경 좀 써 주시겠죠. 하하하"짙은 색 코팅의 안경을 낀 것부터 범상치 않았다. 좋게 봐야 옆집 아저씨 같은…. 말하는 뽐새 역시 '경건' 혹은 '엄숙'과는 거리가 멀었다. 말을 들으면 더욱 대책이 안 선다. 망할 게 뻔한데도 공연을 하겠다고 나선다. "선교 목적이요? 아니 불교 연극을 한번 해볼까 생각중인데요." '괴짜 목사' 배안용(43)씨. 그는 서울 종로구 옥인동 서울교회의 부목사다. 인왕산 산기슭 꼭대기에 위치한 서울교회는 요즘 저녁마다 신명나는 한판 놀이마당으로 들썩거리곤 한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기기에 좋은 '판타스틱스'(연출 엄익제)란 뮤지컬을 공연하고 있다. '판타스틱스'는 1960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작품. 40여년간 단일 극장에서 공연된 세계 최장 공연으로 기록된 명작이다. 뮤지컬이 생뚱 맞게 교회에서 공연되는 것은 배 목사 때문이다. 그는 무려 5억원의 돈을 들여 예배당을 공연장으로 탈바꿈시켰다. 문화 공간 '샘'(02-737-3698)이란 간판을 걸었다. "일주일에 한번, 주일에 예배 드리고 나머지 시간은 그냥 방치돼 있잖아요. 지역 주민과 더 자주 호흡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효율적으로 예배당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일을 저지른 거죠." 공사는 지난해 9월부터 3개월정도 걸렸다. 교단 뒤편을 극장 백스테이지처럼 넓게 만드는 일이 공사의 큰 일이었다. 2층엔 방송국 주조정실 마냥 음향.조명.음악 시설을 갖추었다. 객석은 250석. 교회가 산꼭대기에 있기에 공연 시간에 맞춰 소형 버스를 운행한다. 티켓 값은 1~2만원. 250인치 대형 스크린도 설치해 앞으론 "독립 영화제도 열고 싶다"고 한다.그가 '공연예술의 힘'에 눈뜨게 만들어준 사람은 초등학교 5학년 큰 딸이다. 배 목사는"딸이 너무 내성적이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교육 연극 놀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시켰죠. 무대에 서면서 아이가 씩씩해지더군요. 덕분에 3학년때는 반장, 5학년인 지금은 전교 부회장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자랑했다. 듣다보니, 꼭 딸 때문만은 아닌 듯도 싶다. 배 목사는 한신대 신학과를 나왔지만 대학시절부터 록밴드 활동을 할 만큼 끼 넘치는 예비 목사였다. 대학 가요제에 출전하기 위해 준비하기도 했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청바지 차림으로 다니다 보니 "쟤 신학과 맞아?"란 소리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서울교회는 1958년 이승만 대통령이 세운 기독교 장로회 교회다. 배 목사의 집안은 증조부때부터 '믿음'을 가졌으며, 아버지 배성산 목사가 71년 서울교회 2대 담임 목사로 취임한 이래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교인은 70여명 정도. 작은 교회를 지향한다."한 교회 교인이 200명 넘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서로 속속들이 알고 살갑게 지내는 공동체가 진정한 교회 모습 아닐까요." 덕분에 그는 주말마다 가까운 교인 가족끼리 롤러 브레이드도 타러 가고, 프로축구 K-리그도 보러 다니단다. 가끔씩 노래방에도 우르루 몰려 간다. 그의 18번은 싸이의 '챔피언'. 개사를 해서 부른단다. "교회 다니는 네가 '챔피언', 성경에 미치는 네가 '챔피언'…."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사진=김성룡 기자<xdragon@joongang.co.kr>
[minwoo@joongang.co.kr] [xdragon@joongang.co.kr]
서울교회 `괴짜 목사` 배안용씨`예배당을 공연장으로 … 사고 쳤죠`
배안용 목사가 문화공간 '샘' 2층 주조정실에서 무대를 내려다보며 설명하고 있다. 개관작인 '판타스틱스'의 제작비는 2억원가량. 객석이 꽉 차도 손해 본다. 목사는 "수익 내려고 공연하면 일반 극장과 뭐가 다르냐"며 여유만만이다. 김성룡 기자
"한번 대차게 망해 보려구요. 진짜 망하면 어떡하냐구요? 그땐 하늘에 계신 '든든한 백'이 신경 좀 써 주시겠죠. 하하하"짙은 색 코팅의 안경을 낀 것부터 범상치 않았다. 좋게 봐야 옆집 아저씨 같은…. 말하는 뽐새 역시 '경건' 혹은 '엄숙'과는 거리가 멀었다. 말을 들으면 더욱 대책이 안 선다. 망할 게 뻔한데도 공연을 하겠다고 나선다. "선교 목적이요? 아니 불교 연극을 한번 해볼까 생각중인데요." '괴짜 목사' 배안용(43)씨. 그는 서울 종로구 옥인동 서울교회의 부목사다. 인왕산 산기슭 꼭대기에 위치한 서울교회는 요즘 저녁마다 신명나는 한판 놀이마당으로 들썩거리곤 한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기기에 좋은 '판타스틱스'(연출 엄익제)란 뮤지컬을 공연하고 있다. '판타스틱스'는 1960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작품. 40여년간 단일 극장에서 공연된 세계 최장 공연으로 기록된 명작이다. 뮤지컬이 생뚱 맞게 교회에서 공연되는 것은 배 목사 때문이다. 그는 무려 5억원의 돈을 들여 예배당을 공연장으로 탈바꿈시켰다. 문화 공간 '샘'(02-737-3698)이란 간판을 걸었다. "일주일에 한번, 주일에 예배 드리고 나머지 시간은 그냥 방치돼 있잖아요. 지역 주민과 더 자주 호흡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효율적으로 예배당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일을 저지른 거죠." 공사는 지난해 9월부터 3개월정도 걸렸다. 교단 뒤편을 극장 백스테이지처럼 넓게 만드는 일이 공사의 큰 일이었다. 2층엔 방송국 주조정실 마냥 음향.조명.음악 시설을 갖추었다. 객석은 250석. 교회가 산꼭대기에 있기에 공연 시간에 맞춰 소형 버스를 운행한다. 티켓 값은 1~2만원. 250인치 대형 스크린도 설치해 앞으론 "독립 영화제도 열고 싶다"고 한다.그가 '공연예술의 힘'에 눈뜨게 만들어준 사람은 초등학교 5학년 큰 딸이다. 배 목사는"딸이 너무 내성적이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교육 연극 놀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시켰죠. 무대에 서면서 아이가 씩씩해지더군요. 덕분에 3학년때는 반장, 5학년인 지금은 전교 부회장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자랑했다. 듣다보니, 꼭 딸 때문만은 아닌 듯도 싶다. 배 목사는 한신대 신학과를 나왔지만 대학시절부터 록밴드 활동을 할 만큼 끼 넘치는 예비 목사였다. 대학 가요제에 출전하기 위해 준비하기도 했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청바지 차림으로 다니다 보니 "쟤 신학과 맞아?"란 소리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서울교회는 1958년 이승만 대통령이 세운 기독교 장로회 교회다. 배 목사의 집안은 증조부때부터 '믿음'을 가졌으며, 아버지 배성산 목사가 71년 서울교회 2대 담임 목사로 취임한 이래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교인은 70여명 정도. 작은 교회를 지향한다."한 교회 교인이 200명 넘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서로 속속들이 알고 살갑게 지내는 공동체가 진정한 교회 모습 아닐까요." 덕분에 그는 주말마다 가까운 교인 가족끼리 롤러 브레이드도 타러 가고, 프로축구 K-리그도 보러 다니단다. 가끔씩 노래방에도 우르루 몰려 간다. 그의 18번은 싸이의 '챔피언'. 개사를 해서 부른단다. "교회 다니는 네가 '챔피언', 성경에 미치는 네가 '챔피언'…."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사진=김성룡 기자<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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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을 문화놀이터로
'예배당을 문화놀이터로' 서울교회 배안용 부목사"
성전 더럽힌다 욕도 들었지만 선교보다 세상에 봉사해야죠"
서울 인왕산 중턱의 서울교회. 차 한 대가 겨우 통과하는 좁은 골목으로 언덕을 한참 오르면 나오는 이 교회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세웠다. 48년 된 이 교회는 요즘 매일 저녁 뮤지컬 ‘환상의 철부지들’(연출 엄익제)을 공연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60년 초연 이래 42년간 장기공연된 브로드웨이 히트작으로, 선교와는 무관한 직업 배우들의 일반 연극이다. 예배당을 공연장으로도 쓸 수 있게 개조해서 첫 공연으로 이 작품을 올린 지 석 달 째, 요즘은 매일 30~40명이 보러 온다. 많을 때는 하루에 200명이 온 적도 있다. 낮에는 예배보고 밤에는 공연한다.
문화공간 ‘샘’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이 특별한 공간의 책임자는 배안용(43) 부목사. 예배 시간을 빼곤 닫혀 있는 교회 본당을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개방하자는 생각으로, 지난해 9월부터 리모델링 공사를 해서 본당을 공연장으로 꾸몄다. 100평 공간 중 설교단 자리를 넓게 터서 49평 무대를 만들고, 조명ㆍ음향 장비에 작지만 무대조정실도 갖췄다. 객석은 250석.
돈이 많아서, 선교를 위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서울교회는 신도 70명의 작은 교회다. 리모델링 공사는 대출을 받아서 했다. 건물이 하도 낡아서 천장에서 비가 줄줄 새고 벽에는 곰팡이가 피어 귀신 나올 것 같던 교회가 덕분에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말끔하게 새단장을 했다. 대형교회가 본당과 별도로 최고 시설의 대형 공연장을 지은 예는 더러 있다. 하지만 선교 목적의 성극이나 가스펠 공연을 가끔 할 뿐 대부분 개점 휴업 상태다. 그에 비해 서울교회는 종교를 떠나 누구나 활용할 수 있게 본당을 내주고, 장기 공연을 올린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배 목사는 “선교를 위해 문화를 택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봉사하기 위해 문화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국 교회가 100년이 넘었으니 이제 사회에 베풀 때가 되었어요. 교회에서 문화행사를 하면서 종교적 제약을 두고 자기 간판을 내세우면, 그건 세상과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 대해 주장을 하는 거에요. 차용증서 쓰고 돈을 주면 그건 그냥 주는 게 아니잖아요? ”
공연을 한 시간 앞 둔 오후 6시 30분, 배 목사의 무전기로 무전이 들어온다. 문화공간 샘의 기획실장을 맡은 동생 배인용씨가 손님 실어올 봉고차를 끌고 나간다고 알리는 내용이다. 요즘 형제는 매일 저녁 번갈아 12인승 봉고차를 운전해 관객을 실어 나르고 있다. 교회가 버스가 다니는 큰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생각해낸 아이디어다. 샤브샤브 집을 하다가 형에게 불려와 극장 일을 보고 있는 동생 배씨. 운전석에 앉은 그에게 ‘형님이 도깨비 같지 않냐’고 물으니 “예전부터 워낙 그랬는데요, 뭘” 하며 웃어 넘긴다.
배 목사는 신학대학 시절부터 튀었다. 록밴드를 하면서 대학가요제에 나갈 준비도 했단다. “다른 학생들은 정장에 007 가방에 두꺼운 성경 끼고 다니는데, 긴 머리에 청바지에 가출한 애들 들고 다니는 스포츠가방 갖고 다녔으니까요. 한마디로 날라리였죠, 뭐.”
진작부터 끼 많은 목사라지만, 안 해본 극장 일을 하려니 좌충우돌에 고민도 많다. 망할 때 망하더라도 한 번 끝까지 가볼 작정이다. 대중음악 콘서트, 영화 시사회도 해볼 생각이다.
“극장 문을 열면서 연극인들을 초대했더니 다들 부정적이데요. 이런 데서 흥행이 되겠냐, 이런 시설로 공연은 무슨, 쇼 하냐, 한 두 번 하다가 말겠지, 그런 것들이었죠. 외부의 교인들은 더 했어요. 하나님의 성전에서 비신도가 공연하는 게 우습다는 지적부터 거룩한 성전을 더럽힌다며 교회 팔아먹는 놈이라고 욕하는 소리까지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교인이 쓰지 않을 때 교회는 그냥 건물일 뿐이에요. 하나님을 건물에 가둬둔다는 생각 자체가 건방진 거 아닙니까?”
그의 바람은 이 작은 공간이 지역 주민들의 문화 놀이터가 되는 것이다. 시장통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동네 사람들이 교회로 공연 보러 오는 것을 꿈꾼다. “비록 초라한 무대이지만, 여기 서는 젊은이들 가운데 미래의 비틀스가 나올 수도 있지 않겠어요? 축구가 발전하려면 동네마다 FC.가 많아야 하듯 비록 작고 초라하더라도 이런 문화공간이 많아야 해요.”
오미환기자 mhoh@hk.co.kr
입력시간 : 2006/08/16 18:49
성전 더럽힌다 욕도 들었지만 선교보다 세상에 봉사해야죠"
서울 인왕산 중턱의 서울교회. 차 한 대가 겨우 통과하는 좁은 골목으로 언덕을 한참 오르면 나오는 이 교회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세웠다. 48년 된 이 교회는 요즘 매일 저녁 뮤지컬 ‘환상의 철부지들’(연출 엄익제)을 공연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60년 초연 이래 42년간 장기공연된 브로드웨이 히트작으로, 선교와는 무관한 직업 배우들의 일반 연극이다. 예배당을 공연장으로도 쓸 수 있게 개조해서 첫 공연으로 이 작품을 올린 지 석 달 째, 요즘은 매일 30~40명이 보러 온다. 많을 때는 하루에 200명이 온 적도 있다. 낮에는 예배보고 밤에는 공연한다.
문화공간 ‘샘’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이 특별한 공간의 책임자는 배안용(43) 부목사. 예배 시간을 빼곤 닫혀 있는 교회 본당을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개방하자는 생각으로, 지난해 9월부터 리모델링 공사를 해서 본당을 공연장으로 꾸몄다. 100평 공간 중 설교단 자리를 넓게 터서 49평 무대를 만들고, 조명ㆍ음향 장비에 작지만 무대조정실도 갖췄다. 객석은 250석.
돈이 많아서, 선교를 위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서울교회는 신도 70명의 작은 교회다. 리모델링 공사는 대출을 받아서 했다. 건물이 하도 낡아서 천장에서 비가 줄줄 새고 벽에는 곰팡이가 피어 귀신 나올 것 같던 교회가 덕분에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말끔하게 새단장을 했다. 대형교회가 본당과 별도로 최고 시설의 대형 공연장을 지은 예는 더러 있다. 하지만 선교 목적의 성극이나 가스펠 공연을 가끔 할 뿐 대부분 개점 휴업 상태다. 그에 비해 서울교회는 종교를 떠나 누구나 활용할 수 있게 본당을 내주고, 장기 공연을 올린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배 목사는 “선교를 위해 문화를 택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봉사하기 위해 문화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국 교회가 100년이 넘었으니 이제 사회에 베풀 때가 되었어요. 교회에서 문화행사를 하면서 종교적 제약을 두고 자기 간판을 내세우면, 그건 세상과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 대해 주장을 하는 거에요. 차용증서 쓰고 돈을 주면 그건 그냥 주는 게 아니잖아요? ”
공연을 한 시간 앞 둔 오후 6시 30분, 배 목사의 무전기로 무전이 들어온다. 문화공간 샘의 기획실장을 맡은 동생 배인용씨가 손님 실어올 봉고차를 끌고 나간다고 알리는 내용이다. 요즘 형제는 매일 저녁 번갈아 12인승 봉고차를 운전해 관객을 실어 나르고 있다. 교회가 버스가 다니는 큰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생각해낸 아이디어다. 샤브샤브 집을 하다가 형에게 불려와 극장 일을 보고 있는 동생 배씨. 운전석에 앉은 그에게 ‘형님이 도깨비 같지 않냐’고 물으니 “예전부터 워낙 그랬는데요, 뭘” 하며 웃어 넘긴다.
배 목사는 신학대학 시절부터 튀었다. 록밴드를 하면서 대학가요제에 나갈 준비도 했단다. “다른 학생들은 정장에 007 가방에 두꺼운 성경 끼고 다니는데, 긴 머리에 청바지에 가출한 애들 들고 다니는 스포츠가방 갖고 다녔으니까요. 한마디로 날라리였죠, 뭐.”
진작부터 끼 많은 목사라지만, 안 해본 극장 일을 하려니 좌충우돌에 고민도 많다. 망할 때 망하더라도 한 번 끝까지 가볼 작정이다. 대중음악 콘서트, 영화 시사회도 해볼 생각이다.
“극장 문을 열면서 연극인들을 초대했더니 다들 부정적이데요. 이런 데서 흥행이 되겠냐, 이런 시설로 공연은 무슨, 쇼 하냐, 한 두 번 하다가 말겠지, 그런 것들이었죠. 외부의 교인들은 더 했어요. 하나님의 성전에서 비신도가 공연하는 게 우습다는 지적부터 거룩한 성전을 더럽힌다며 교회 팔아먹는 놈이라고 욕하는 소리까지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교인이 쓰지 않을 때 교회는 그냥 건물일 뿐이에요. 하나님을 건물에 가둬둔다는 생각 자체가 건방진 거 아닙니까?”
그의 바람은 이 작은 공간이 지역 주민들의 문화 놀이터가 되는 것이다. 시장통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동네 사람들이 교회로 공연 보러 오는 것을 꿈꾼다. “비록 초라한 무대이지만, 여기 서는 젊은이들 가운데 미래의 비틀스가 나올 수도 있지 않겠어요? 축구가 발전하려면 동네마다 FC.가 많아야 하듯 비록 작고 초라하더라도 이런 문화공간이 많아야 해요.”
오미환기자 mhoh@hk.co.kr
입력시간 : 2006/08/16 18:49
우리 모두의 꿈! 해피엔드
배안용의 문화놀이터
우리 모두의 꿈! 해피엔드
해피엔드라는 영화가 있다. 1999년에 개봉된 <해피엔드>(정지우 감독, 주연 : 전도연, 최민식)는 불륜에 빠진 여자, 그녀를 사랑하는 옛 애인, 그리고 그녀의 실직한 남편을 통해 기존의 한국영화가 다루지 못했던 '가족관 및 성의식'을 전면적으로 다루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영화이다. 세기말과 IMF를 동시에 직면했던 1999년 제작 당시, ‘치정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해체되어 가는 한국 중산층 가정의 위기를 그린 영화 <해피엔드>는 ‘가부장적 가치관의 붕괴와 남녀 성역할의 전복’이라는 사회현실을 섬세하면서 강렬하게, 자극적이고 솔직하게, 대담하면서도 가슴 아프게 그려낸 작품이라 한다. 이 작품에서는 아내와 남편, 그리고 외도남 모두가 꿈꿨던 자신만의 해피엔드가 있었다. 물론 현실과는 좀 달랐지만...
한양레퍼토리씨어터에서 공연되었던 뮤지컬 “해피엔드”가 있다. 뮤지컬 해피엔드는 도로시 레인 작, 박경일 연출로 공연되었다. “꿈의 크리스마스··· 노래와 춤, 그리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라는 카피를 걸고 공연된 이 뮤지컬의 시놉시스는 이런 것이다.
크리스마스 3일전 : 갱단의 행동대장 번개는 자신이 경영하는 맥주홀에 전도하러 들린 구세군 주영원을 만나게 된다. 그 때 갱단에 의해 기동찬 약사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번개는 나카무라의 조작에 의해 살인용의자로 체포된다.
크리스마스 2일전 : 주영원은 자신의 입장이 난처하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번개와 단 둘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결국 구세군에서 쫓겨나게 된다. 구세군에서 다시 일하고자 하는 주영원은 반대에 부딪힌다. 혐의를 벗은 번개는 주영원을 찾아다니다가 갱단의 은행털이 계획을 수행하지 못한다. 이를 알게 된 갱단 두목 불나비는 번개를 없애기로 결심하고 번개를 찾아 구세군 집회에 나타난다.
크리스마스 : 집회에서 구세군 변해도 대위는 불나비가 자신의 아내임을 알아보게 되어 불나비는 잃었던 남편을 되찾은 기쁨으로 갱단활동을 중단하고 은행을 턴 돈을 모두 구세군에 기부한다. 진실한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고자하는 주영원의 의지로 번개는 주영원과 약혼하기로 결심한다.
영화 ‘해피엔드’와 뮤지컬 ‘해피엔드’의 주인공들은 결국 자신만의 해피엔드를 쟁취 했을까? 사실 우리는 매 순간 ‘행복’을 꿈꾸며 산다. 우리가 꿈꾸는 모든 일에서 우리는 행복한 결말을 원한다. 행복한 결말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인가? 나 자신을 희생하여 구도자의 길을 가는 사람의 목적도 결국 자신의 행복한 결말, 구도(求道)에 있을 것이다.
해피엔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별로 권할 만한 작품은 아니지만, 최근 개봉한 영화 “그놈 목소리”를 보았다. "마지막 장면을 위해서 끝까지 갔다"는 박진표 감독의 말처럼 “그놈 목소리”는 마지막을 향해 차근히 분노와 억울한 울분을 부모의 가슴 속에 묻어 놓는다. 44일간 유괴당한 부모의 생지옥을 찬찬히 살피는 과정도 이 마지막을 위한 전초전에 해당한다. 사실 해피엔드를 꿈꾸는 입장에서 이미 미제사건을 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부터 불안한 출발이기는 했다.
물론 영화를 보는 사이 몇 번의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장면이 있었지만, 영화가 끝난 후 우리는 ‘다큐멘타리’를 보았나? 아님 어떤 신문의 평처럼 ‘그것이 알고 싶다’ 후속편이었나? 헷갈리면서 찝찝한 기분을 털어 버릴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것처럼 잔인무도한 범인이 아직 길거리를 나와 함께 걸어갈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해피엔딩이 아니고, 언해피엔딩이다. 어차피 사실을 토대로 만든 영화지만 범인이 잡히도록 극화했더라면, 좀 더 흥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핀잔도 해 보지만, 결국 내 해피엔딩에 가한 타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작품이었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갖는 작은 행복이란 어쩌면 그 순간만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현실도피적인 환상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현실이라는 것은 냉엄하기만 하니까...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내가 내 다리로 걸어간 것만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무지, 엄청 해피한 일이기에, 우리는 더욱 더 해피엔딩에 목을 맨다.
그러나 영화 “그놈 목소리”를 보고 나와 며칠을 두고 찝찝할 것 같은 기분은 바쁜 일상으로 인해 쉽게 잊어버리고 만다. 문득 “그놈 목소리”가 해피엔딩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해 보다가 아직도 나를 기분 나쁘게 한 박진표 감독의 목적(?)대로 “그래, 이 영화 땜에 범인 잡혀서 우리 모두 해피엔딩이 되면 좋겠다”라는 심정이 되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 거짓의 극화된 해피엔딩 보다는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사회적인 해피엔딩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저러나 내 인생의 해피엔딩은 정말 누릴 수 있을까?
우리 모두의 꿈! 해피엔드
해피엔드라는 영화가 있다. 1999년에 개봉된 <해피엔드>(정지우 감독, 주연 : 전도연, 최민식)는 불륜에 빠진 여자, 그녀를 사랑하는 옛 애인, 그리고 그녀의 실직한 남편을 통해 기존의 한국영화가 다루지 못했던 '가족관 및 성의식'을 전면적으로 다루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영화이다. 세기말과 IMF를 동시에 직면했던 1999년 제작 당시, ‘치정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해체되어 가는 한국 중산층 가정의 위기를 그린 영화 <해피엔드>는 ‘가부장적 가치관의 붕괴와 남녀 성역할의 전복’이라는 사회현실을 섬세하면서 강렬하게, 자극적이고 솔직하게, 대담하면서도 가슴 아프게 그려낸 작품이라 한다. 이 작품에서는 아내와 남편, 그리고 외도남 모두가 꿈꿨던 자신만의 해피엔드가 있었다. 물론 현실과는 좀 달랐지만...
한양레퍼토리씨어터에서 공연되었던 뮤지컬 “해피엔드”가 있다. 뮤지컬 해피엔드는 도로시 레인 작, 박경일 연출로 공연되었다. “꿈의 크리스마스··· 노래와 춤, 그리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라는 카피를 걸고 공연된 이 뮤지컬의 시놉시스는 이런 것이다.
크리스마스 3일전 : 갱단의 행동대장 번개는 자신이 경영하는 맥주홀에 전도하러 들린 구세군 주영원을 만나게 된다. 그 때 갱단에 의해 기동찬 약사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번개는 나카무라의 조작에 의해 살인용의자로 체포된다.
크리스마스 2일전 : 주영원은 자신의 입장이 난처하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번개와 단 둘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결국 구세군에서 쫓겨나게 된다. 구세군에서 다시 일하고자 하는 주영원은 반대에 부딪힌다. 혐의를 벗은 번개는 주영원을 찾아다니다가 갱단의 은행털이 계획을 수행하지 못한다. 이를 알게 된 갱단 두목 불나비는 번개를 없애기로 결심하고 번개를 찾아 구세군 집회에 나타난다.
크리스마스 : 집회에서 구세군 변해도 대위는 불나비가 자신의 아내임을 알아보게 되어 불나비는 잃었던 남편을 되찾은 기쁨으로 갱단활동을 중단하고 은행을 턴 돈을 모두 구세군에 기부한다. 진실한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고자하는 주영원의 의지로 번개는 주영원과 약혼하기로 결심한다.
영화 ‘해피엔드’와 뮤지컬 ‘해피엔드’의 주인공들은 결국 자신만의 해피엔드를 쟁취 했을까? 사실 우리는 매 순간 ‘행복’을 꿈꾸며 산다. 우리가 꿈꾸는 모든 일에서 우리는 행복한 결말을 원한다. 행복한 결말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인가? 나 자신을 희생하여 구도자의 길을 가는 사람의 목적도 결국 자신의 행복한 결말, 구도(求道)에 있을 것이다.
해피엔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별로 권할 만한 작품은 아니지만, 최근 개봉한 영화 “그놈 목소리”를 보았다. "마지막 장면을 위해서 끝까지 갔다"는 박진표 감독의 말처럼 “그놈 목소리”는 마지막을 향해 차근히 분노와 억울한 울분을 부모의 가슴 속에 묻어 놓는다. 44일간 유괴당한 부모의 생지옥을 찬찬히 살피는 과정도 이 마지막을 위한 전초전에 해당한다. 사실 해피엔드를 꿈꾸는 입장에서 이미 미제사건을 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부터 불안한 출발이기는 했다.
물론 영화를 보는 사이 몇 번의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장면이 있었지만, 영화가 끝난 후 우리는 ‘다큐멘타리’를 보았나? 아님 어떤 신문의 평처럼 ‘그것이 알고 싶다’ 후속편이었나? 헷갈리면서 찝찝한 기분을 털어 버릴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것처럼 잔인무도한 범인이 아직 길거리를 나와 함께 걸어갈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해피엔딩이 아니고, 언해피엔딩이다. 어차피 사실을 토대로 만든 영화지만 범인이 잡히도록 극화했더라면, 좀 더 흥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핀잔도 해 보지만, 결국 내 해피엔딩에 가한 타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작품이었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갖는 작은 행복이란 어쩌면 그 순간만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현실도피적인 환상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현실이라는 것은 냉엄하기만 하니까...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내가 내 다리로 걸어간 것만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무지, 엄청 해피한 일이기에, 우리는 더욱 더 해피엔딩에 목을 맨다.
그러나 영화 “그놈 목소리”를 보고 나와 며칠을 두고 찝찝할 것 같은 기분은 바쁜 일상으로 인해 쉽게 잊어버리고 만다. 문득 “그놈 목소리”가 해피엔딩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해 보다가 아직도 나를 기분 나쁘게 한 박진표 감독의 목적(?)대로 “그래, 이 영화 땜에 범인 잡혀서 우리 모두 해피엔딩이 되면 좋겠다”라는 심정이 되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 거짓의 극화된 해피엔딩 보다는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사회적인 해피엔딩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저러나 내 인생의 해피엔딩은 정말 누릴 수 있을까?
웹진
우리가 아는 변강쇠는 무엇인가?힘 좋고, 일 잘하고, 여자에게 큰 인기가 있을 것 같은 마당쇠를 떠올리는 것은 아마 우리에게 각인된 선입견이 ‘변강쇠는 정력이 좋다’라는 막연한 개념 때문일 것이다. 또한 변강쇠의 아내인 옹녀라는 여인도 섹시하고, 예쁘며, 왠지 몰래 바람이라도 낼 것 같은 냄새를 물씬 풍기는 그런 단어이다.그래서 변강쇠와 옹녀의 이야기는 젊잖게 말하기는 조금 껄끄럽고, 술자리 안주 삼아 이리저리 말해보는 그런 잡스런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 했다.그런데, 변강쇠전은 판소리로 공연되었던 작품으로 신재효의 판소리 사설 여섯 마당 가운데 하나로 일명 가루지기 타령, 횡부가, 송장가, 변강전, 변강쇠타령 등으로 불리는 작품이다. 이런 판소리가 지금 별 신통치 않은 성인애로물에만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어떤 문화가 없어져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람들이 외면하기 때문일 것이다. 변강쇠전은 당시 판소리의 후원자였던 양반들로부터 외면당했다고 보는 견해가 가장 강하다. 워낙 욕이 많고, 내용 또한 별 재미가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니 이야기의 내용은 없어지고, 그저 성적인 개념으로서만 변강쇠와 옹녀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변강쇠는 무엇이고, 옹녀는 무엇인가?변강쇠는 조선후기 토지소유의 집중화현상으로 농민층에 일종의 계급이 생길 때 나타난 하류계층이다. 조선후기의 농민들은 좋은 품종을 농사짓고 거둬 점점 부농으로 성장하는 그룹과 소작농으로 점점 가난해 지는 빈농의 선이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변강쇠는 별 기술도 없이, 노력도 없이 그저 남 일이나 조금 해주고 놀기 바쁜 총각이지만, 또 여자들을 깔보며 소위 말해 등처먹고 사는 아주 가부장적인 건달이다.변강쇠가 반사회적 인물인 것과 달리 옹녀는 사회생활에 충실한 억척스럽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여자이다. 사주에 청상살이 겹겹이 쌓인 여인으로 끊임없는 남편들의 죽음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남자를 사귀는 여성이고, 바로 자신의 삶을 위해 끊임없이 결혼을 하는 모습이 유교사회의 반사회적 인물이지만 요즘 말로 하면 억척녀이다.돈 잘버는 억척녀 옹녀와 건달 변강쇠의 만남은 조선후기의 지탄 받던 남녀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 했다. 하지만, 이 둘의 가정생활은 오래가지 못한다. 옹녀의 억척스러운 삶의 태도에 가부장적인 변강쇠는 늘 반대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별다른 기술이나 노는 것을 좋아하는 변강쇠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옹녀가 벌어온 돈으로 노름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둘이 자리잡은 산 속 집에서 변강쇠는 나무를 해 오겠다고 하고, 나무를 하러 갔지만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때 집에 돌아오다가 마을 입구의 장승 둘을 베어 오게 된다.
마을(공동체)의 수호신 장승과 공동체를 헤치는 독불장군 변강쇠의 싸움을 그렇게 시작되고 자기 중심적인 이기주의자 변강쇠는 죽는 순간까지 욕설을 뿜어대며 죽는다. 물론 죽은 후 이야기의 반이 더 남아있긴 하지만, 여기서 줄이고 필자는 오히려 변강쇠전을 통해 문화이야기를 하고 싶다.세상에 적응 못하고 건방을 떨며 약한 여자에게나 행세를 하는 가부장적인 건달 변강쇠와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억척스럽게 살아보려 애를 쓰는 옹녀 부부는 조선후기 사람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할 만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서로 다른 색깔의 색종이를 들고 있으면 이렇게 이야기한다. “야, 나랑 색깔이 틀려!”위 문장에서 무엇이 틀렸는지 지금 모르겠다면 다시한번 생각해 보시라. 틀리다는 말은 ‘맞다’는 말의 반대말이다. 색종이의 색깔이 틀리다는 말은 노란색이어야 하는데 파란색이라는 말이다. 모두 노란색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너는 노란색이고 나는 파란색이다 할 때는 “야, 나랑 색깔이 달라!” 해야 하는 것이다.
문화이야기의 시작은 이런 다른 것을 ‘틀리다’고 말하지 않고 ‘다르다’고 말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문화는 곧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다양성을 인정할 수 없다면 우리에겐 문화라는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문화’라는 순수한 우리말이 없나?)우리는 고기를 짤라서 젓가락으로 먹지만, 서양 사람들은 익은 고기를 통체로 올려놓고 상 위에서 칼로 썰어 먹는다. 우리들이 볼 때는 젊잖지 못한 행동이지만, 서양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는 일하는 사람에게 의존하는 생활습관이다. 이런 서로 다른 것을 틀렸다고 하지않고 다르다고 인정할때 문화는 다양성을 안고 존재하는 것이다.
더 많은내용은 홈페이지 http://club.cyworld.com/2006sam 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변강쇠는 무엇이고, 옹녀는 무엇인가?변강쇠는 조선후기 토지소유의 집중화현상으로 농민층에 일종의 계급이 생길 때 나타난 하류계층이다. 조선후기의 농민들은 좋은 품종을 농사짓고 거둬 점점 부농으로 성장하는 그룹과 소작농으로 점점 가난해 지는 빈농의 선이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변강쇠는 별 기술도 없이, 노력도 없이 그저 남 일이나 조금 해주고 놀기 바쁜 총각이지만, 또 여자들을 깔보며 소위 말해 등처먹고 사는 아주 가부장적인 건달이다.변강쇠가 반사회적 인물인 것과 달리 옹녀는 사회생활에 충실한 억척스럽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여자이다. 사주에 청상살이 겹겹이 쌓인 여인으로 끊임없는 남편들의 죽음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남자를 사귀는 여성이고, 바로 자신의 삶을 위해 끊임없이 결혼을 하는 모습이 유교사회의 반사회적 인물이지만 요즘 말로 하면 억척녀이다.돈 잘버는 억척녀 옹녀와 건달 변강쇠의 만남은 조선후기의 지탄 받던 남녀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 했다. 하지만, 이 둘의 가정생활은 오래가지 못한다. 옹녀의 억척스러운 삶의 태도에 가부장적인 변강쇠는 늘 반대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별다른 기술이나 노는 것을 좋아하는 변강쇠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옹녀가 벌어온 돈으로 노름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둘이 자리잡은 산 속 집에서 변강쇠는 나무를 해 오겠다고 하고, 나무를 하러 갔지만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때 집에 돌아오다가 마을 입구의 장승 둘을 베어 오게 된다.
마을(공동체)의 수호신 장승과 공동체를 헤치는 독불장군 변강쇠의 싸움을 그렇게 시작되고 자기 중심적인 이기주의자 변강쇠는 죽는 순간까지 욕설을 뿜어대며 죽는다. 물론 죽은 후 이야기의 반이 더 남아있긴 하지만, 여기서 줄이고 필자는 오히려 변강쇠전을 통해 문화이야기를 하고 싶다.세상에 적응 못하고 건방을 떨며 약한 여자에게나 행세를 하는 가부장적인 건달 변강쇠와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억척스럽게 살아보려 애를 쓰는 옹녀 부부는 조선후기 사람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할 만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서로 다른 색깔의 색종이를 들고 있으면 이렇게 이야기한다. “야, 나랑 색깔이 틀려!”위 문장에서 무엇이 틀렸는지 지금 모르겠다면 다시한번 생각해 보시라. 틀리다는 말은 ‘맞다’는 말의 반대말이다. 색종이의 색깔이 틀리다는 말은 노란색이어야 하는데 파란색이라는 말이다. 모두 노란색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너는 노란색이고 나는 파란색이다 할 때는 “야, 나랑 색깔이 달라!” 해야 하는 것이다.
문화이야기의 시작은 이런 다른 것을 ‘틀리다’고 말하지 않고 ‘다르다’고 말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문화는 곧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다양성을 인정할 수 없다면 우리에겐 문화라는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문화’라는 순수한 우리말이 없나?)우리는 고기를 짤라서 젓가락으로 먹지만, 서양 사람들은 익은 고기를 통체로 올려놓고 상 위에서 칼로 썰어 먹는다. 우리들이 볼 때는 젊잖지 못한 행동이지만, 서양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는 일하는 사람에게 의존하는 생활습관이다. 이런 서로 다른 것을 틀렸다고 하지않고 다르다고 인정할때 문화는 다양성을 안고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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