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11일

미술인 사장시키는 대형미술학원

[한겨레]
2007학년도 미술대학 정시 합격자가 거의 다 발표되었다. 한해의 입시라는 대업(?)을 마무리하며 한동안 예원과 예술고등학교에서 미술 실기교육을 했던 한 사람으로서 미술교육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본래 예술학교의 설립 취지는 예술적 재능을 가진 학생들을 조기에 발굴하여 자신의 개성을 살리면서 사물을 관찰하는 방법과 그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그리고 생각하며, 생각한 것을 다시 그리게 함으로써 학생 개개인의 눈높이에 맞도록 표현하고 형상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요즘의 미술 교육 현장에서는 대학입시라는 절체절명의 과제 앞에서 본래의 취지는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미술대학 신입생 합격자 분포도를 보면 예술 고등학교 출신들이 거의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결과를 놓고 보면 재능 있는 학생들이 일찍부터 자신들의 진로를 잡아 예술학교로 진학했다고 볼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내신 자체 평가에 따른 득을 얻을 뿐이지 실기지도는 거의 미술학원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예술고등학교의 미술 실기 지도가 입시 미술학원의 실기 지도에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홍대 앞의 대형 입시학원들은 미술학원의 메카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지방이나 서울 근교에 있는 미술학원들은 홍대 앞 이름 있는 대형 미술학원과 손잡고 체인점화 하여 합격률을 공유, 학원 이름만으로 엄청난 합격자를 배출한 양 홍보수단으로 이용한다.
유명 미술학원들은 그림 개발을 위해 연구실을 두고 재주 있는 미대생이나 대학원생들을 고용하여 대학별 입시 경향을 분석하게 하고 그림 샘플을 제작하여 수강생들에게 오랜 시간 반복, 숙달시켜 이를 토대로 입시에 임하도록 훈련시키고 있다.





반면 예술고등학교는 한정된 강사료로 학생들에게 충분한 실기 지도를 할 엄두를 못내 입시 실기 지도에 방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고 학생들은 학교 밖의 미술학원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수능시험이 끝나면 대부분의 미대 수험생들은 한 달 반의 기간 동안 거의 학교도 안 가고 학원의 실기 지도에 매달리게 된다.
집이 좀 먼 학생들은 학원 근처에 합숙이나 고시원 등을 얻어 생활하기까지 한다.
합격률은 학원의 존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학원은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러다보니 학원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져 별의 별일들이 다 생기고 있다.
보통 대형 미술학원 수강생은 적게는 100명에서 많으면 300명 정도다. 수능 이후에 실기시간이 늘다보니 레슨비도 평상시의 3배를 더 내야 한다. 유명 학원들은 수십 억원이 넘는 수강료를 단번에 걷어 들이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수강생들이 몰리는 대형 미술학원에서는 간혹 곤혹스러운 사태도 벌어지곤 한다. 잘 나가는 것을 시샘한 주변 학원들이 수강료 포탈을 국세청에 고발하여 지난해 ○○미술학원은 5년 동안 누락된 세금과 벌금 등을 합해 30여억원을 추징당한 사례도 있다.
또한 학원 간 지나친 경쟁을 막기 위해 하루 4시간 세 번씩 평균 12시간을 실기시간으로 정해 놓고 있으나 일부 미술학원에서 이를 어기고 새벽까지 지도하다 신고 당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미대 입시 실태로 인해 수능 이후의 학교 교육은 사라지고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과 함께 미술 지망생들은 재능과 개성은 무시당한 채 주입식 교육으로 인한 입시기계로 전락하고 말아 미술계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미술계를 더 어둡게 하는 것은 재주가 뛰어난 미대 학생 대부분이 자신이 졸업한 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학원들이 졸업생 가운데 잘하는 학생을 강사로 많이 채용하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생들은 100만원이 채 안 되는 강사료를 받는다.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한다는 포부를 가지지만 아무리 재능 있는 학생이라도 오랜 시간 자신의 작업을 게을리 하고 졸업할 때까지 학원가에서 맴돌다 보면 그들이 처음 가진 예술가의 꿈은 사라지고 만다. 재주 있는 학원 강사만 넘쳐나게 되는 것이다.
예술 작업은 창조적 작업이기에 창조를 한다는 것은 자신만의 재능과 개성도 중요하지만 많은 시간 동안 시행착오의 고통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은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보다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대형 미술학원에 매달리는 입시생, 이를 이용해 나날이 대형화 되어가는 미술학원들은 지금 세금 포탈과 서로서로를 감시하는 어두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합격에만 급급한 나머지 물불 안 가리는 학부모나 미술 지망생을 이용, 그들을 기능공처럼 숙련시키고 미래의 작가를 키워야 한다는 의식은 상실한 채 자라나는 인재들을 사장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우리에게 새로운 대안은 없을까. 전반적으로 사교육비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우리나라의 입시문제점. 진정한 환쟁이의 출현을 기대하며 우리의 예술계에도 서양 중세시대의 도제(徒弟)제도처럼 제자와 함께 작업하는 개인 작업실이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미술 지망생들을 작가로 키우기 위해 대형학원이 아닌 개인 아틀리에로의 분산을 통해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미술인의 양성과 함께 전업 미술인들의 창작에도 경제적 도움이 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김상일(조각가·건축가) human3ksi@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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