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1일

어떤 것으로 채울까?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 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눅16:13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 밥이 다르게 보입니다.

제가 배가 고프면, 집에 가서 밥 달라고 해요. 그런데 밥이 늦어지면, 못 참아 가지고, 냉장고를 열고 아무거나 꺼내서 막 먹어요. 다 먹고 날 즈음에, 아내가 금방 해 놓은 밥을 퍼서 주는데.. 먹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금방 해 논 밥을 공복으로 바라 볼 때와 배를 가득 채운 후에 바라볼 때와는... 같은 밥인데,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내가 배부를 때 보는 빵과, 배고플 때 보는 빵... 완전히 다르죠. 배부를 때 보는 빵, 집에 쌓여 있어도.. 나중에 그냥 버립니다. 그런데 내가 배고플 때는.. 허접한 빵이라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웁니다.



▲마찬가지로, 돈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집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말씀을/은혜를/임재를)으로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나서 돈을 쳐다보면, ‘나를 위해서 돈이 어느 정도 필요한가’ ... 그 액수가 명확하게 보여요.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돈을 보면.. 너무너무 맛있어요. 그런데 아무리 아무리 돈을 먹어도.. 배가 안 차요. 마음에 전혀 만족이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일평생 ‘조금만 더 가지면 만족하겠지..’ 하며 삽니다.

돈을 ‘액면가’original value 그대로 정확하게 바라보려면 내가 먼저 하나님을 잔뜩 먹고 나서, 배부른 상태에서 돈을 봐야, 나를 위해서 돈이 어느 정도 필요한가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가족도 마찬가집니다.

아내를 바라보는 눈도, 남편을 바라보는 눈도 같은 원리입니다. 내가 뭔가 지금 ‘굶주려 있는 상태/공허한 상태’에서 아내를 바라보면, 아내가 나의 공허함을 채워줘야 하는 대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만족이 안 됩니다. 내가 배부른 상태에서 보는 아내가.. 진짜 아내의 모습/가치입니다. 그 때라야 아내의 모습/가치를, 제대로 발견할 수 있어요.

자식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사회에서 뭔가 잘 안 풀려서 기가 죽어 있습니다. 그러면 자식을 바라볼 때, ‘너라도 공부를 잘 해서, 이 애비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면 안 되겠니?’ 괜히 자녀에게 부담만 잔뜩 주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배부른 상태에서 보는 자녀가.. 진짜 자녀의 모습/가치입니다. 그 때라야 자녀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할 수 있어요.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기 고유의 인생/사명’이 똑똑히 보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부족함, 허전함을 채워주는.. 어떤 소모품, 희생양이 아닌 거죠.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은

하나님으로 배부르면, 돈이 시시하게 보이고, 돈으로 배부르면, 하나님이 시시하게 보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돈으로 동시에 내 영혼을 배부르게/만족하게 못 한다는 뜻입니다.

로마 시대 때 하도 먹을 것이 많으니까, 로마 귀족들이 배는 한계가 있고 해서 먹고 나서 토하고.. 또 맛있는 것 먹고 또 토하고... 그랬다죠? 그래서 하인들이 항상 잔치자리에 준비하고 있다가, 그 구토물들을 받아 내거나, 잔치 도중에도 계속 청소했다는 역사가 내려져 옵니다.

사람의 배는 하나입니다. 거기다가 여러 개를 같이 못 담습니다. 하나님으로 채우면.. 돈을 토해내야 하는 거고, 돈으로 채우면.. 하나님을 토해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토해 내고, 그 빈자리에 돈을 또 더 채워 넣어야 하니까요.

하나님의 사서(성령님)

성령님은 도서관의 사서

A. B. 심슨이 쓴 「성령님에 대한 묵상」중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평소에 국회 도서관의 귀중한 가치에 대해 역설해온 한 유력한 하원의원이 어느 날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의원님같이 바쁘신 분이 연구와 조사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도서관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알고 계시며, 주어진 논의 주제가 어느 책의 몇 페이지에 있는지를 그렇게 잘 찾으십니까?"
그 하원의원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그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아주 훌륭한 우리의 사서 덕분이지요. 그는 모든 책과 주제를 잘 파악하고 있어서, 완벽하게 그 일을 해냅니다. 우리는 다만 필요한 주제와 관련된 권위 있는 책을 찾아달라는 메모를 써서 사무실의 어린 사환을 시켜 그에게 보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사환은 얼마 안 있어 우리가 원하는 정보가 담긴 책의 해당 페이지를 펼쳐서 가지고 돌아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서(성령님)가 계십니다. 그 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성경을 훨씬 더 잘 이해하시며, 우리의 관찰자며 안내자로서 성경의 의미를 알려 주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삶의 모든 필요 가운데서 실제로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영적 시각과 이해할 수 있는 기관을 주시는 것은 성령님의 특별한 사역입니다. 그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은 거룩한 것들과 그 실체들을 직접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을 의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자기 스스로 생각나는 것과 세상에서 들은 지식들로 하나님을 연구하여 깨닫는 것은 불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