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안용의 문화놀이터
우리 모두의 꿈! 해피엔드
해피엔드라는 영화가 있다. 1999년에 개봉된 <해피엔드>(정지우 감독, 주연 : 전도연, 최민식)는 불륜에 빠진 여자, 그녀를 사랑하는 옛 애인, 그리고 그녀의 실직한 남편을 통해 기존의 한국영화가 다루지 못했던 '가족관 및 성의식'을 전면적으로 다루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영화이다. 세기말과 IMF를 동시에 직면했던 1999년 제작 당시, ‘치정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해체되어 가는 한국 중산층 가정의 위기를 그린 영화 <해피엔드>는 ‘가부장적 가치관의 붕괴와 남녀 성역할의 전복’이라는 사회현실을 섬세하면서 강렬하게, 자극적이고 솔직하게, 대담하면서도 가슴 아프게 그려낸 작품이라 한다. 이 작품에서는 아내와 남편, 그리고 외도남 모두가 꿈꿨던 자신만의 해피엔드가 있었다. 물론 현실과는 좀 달랐지만...
한양레퍼토리씨어터에서 공연되었던 뮤지컬 “해피엔드”가 있다. 뮤지컬 해피엔드는 도로시 레인 작, 박경일 연출로 공연되었다. “꿈의 크리스마스··· 노래와 춤, 그리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라는 카피를 걸고 공연된 이 뮤지컬의 시놉시스는 이런 것이다.
크리스마스 3일전 : 갱단의 행동대장 번개는 자신이 경영하는 맥주홀에 전도하러 들린 구세군 주영원을 만나게 된다. 그 때 갱단에 의해 기동찬 약사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번개는 나카무라의 조작에 의해 살인용의자로 체포된다.
크리스마스 2일전 : 주영원은 자신의 입장이 난처하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번개와 단 둘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결국 구세군에서 쫓겨나게 된다. 구세군에서 다시 일하고자 하는 주영원은 반대에 부딪힌다. 혐의를 벗은 번개는 주영원을 찾아다니다가 갱단의 은행털이 계획을 수행하지 못한다. 이를 알게 된 갱단 두목 불나비는 번개를 없애기로 결심하고 번개를 찾아 구세군 집회에 나타난다.
크리스마스 : 집회에서 구세군 변해도 대위는 불나비가 자신의 아내임을 알아보게 되어 불나비는 잃었던 남편을 되찾은 기쁨으로 갱단활동을 중단하고 은행을 턴 돈을 모두 구세군에 기부한다. 진실한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고자하는 주영원의 의지로 번개는 주영원과 약혼하기로 결심한다.
영화 ‘해피엔드’와 뮤지컬 ‘해피엔드’의 주인공들은 결국 자신만의 해피엔드를 쟁취 했을까? 사실 우리는 매 순간 ‘행복’을 꿈꾸며 산다. 우리가 꿈꾸는 모든 일에서 우리는 행복한 결말을 원한다. 행복한 결말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인가? 나 자신을 희생하여 구도자의 길을 가는 사람의 목적도 결국 자신의 행복한 결말, 구도(求道)에 있을 것이다.
해피엔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별로 권할 만한 작품은 아니지만, 최근 개봉한 영화 “그놈 목소리”를 보았다. "마지막 장면을 위해서 끝까지 갔다"는 박진표 감독의 말처럼 “그놈 목소리”는 마지막을 향해 차근히 분노와 억울한 울분을 부모의 가슴 속에 묻어 놓는다. 44일간 유괴당한 부모의 생지옥을 찬찬히 살피는 과정도 이 마지막을 위한 전초전에 해당한다. 사실 해피엔드를 꿈꾸는 입장에서 이미 미제사건을 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부터 불안한 출발이기는 했다.
물론 영화를 보는 사이 몇 번의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장면이 있었지만, 영화가 끝난 후 우리는 ‘다큐멘타리’를 보았나? 아님 어떤 신문의 평처럼 ‘그것이 알고 싶다’ 후속편이었나? 헷갈리면서 찝찝한 기분을 털어 버릴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것처럼 잔인무도한 범인이 아직 길거리를 나와 함께 걸어갈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해피엔딩이 아니고, 언해피엔딩이다. 어차피 사실을 토대로 만든 영화지만 범인이 잡히도록 극화했더라면, 좀 더 흥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핀잔도 해 보지만, 결국 내 해피엔딩에 가한 타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작품이었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갖는 작은 행복이란 어쩌면 그 순간만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현실도피적인 환상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현실이라는 것은 냉엄하기만 하니까...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내가 내 다리로 걸어간 것만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무지, 엄청 해피한 일이기에, 우리는 더욱 더 해피엔딩에 목을 맨다.
그러나 영화 “그놈 목소리”를 보고 나와 며칠을 두고 찝찝할 것 같은 기분은 바쁜 일상으로 인해 쉽게 잊어버리고 만다. 문득 “그놈 목소리”가 해피엔딩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해 보다가 아직도 나를 기분 나쁘게 한 박진표 감독의 목적(?)대로 “그래, 이 영화 땜에 범인 잡혀서 우리 모두 해피엔딩이 되면 좋겠다”라는 심정이 되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 거짓의 극화된 해피엔딩 보다는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사회적인 해피엔딩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저러나 내 인생의 해피엔딩은 정말 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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