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9일

'군불을 때면서'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면서
쓰다가 버린 파지를 불쏘시개로 쓴다
쓰다가 고치고 쓰다가 고치다가
원본에서 멀어져버린
시 한 편을 위해
사생아처럼 버려진 종이들
누추하고 불구인 것들
그렇다고 완벽하지도 못한
시 한 편의 알리바이를 위해
소신해야 하는 내 시의 과거들
제 몸에 불 붙여
포개놓은 장작에 불길을 옮겨 일궈주는 밑불,
그래서 시 몇 편보다
저 수많은 파지가 더 시답다
진입해 보지도 못한 중심에서 밀려나
지금은 구겨진 파지처럼 주저앉아
하릴없이 군불이나 때지만
나 여기 있어 모두에게 얼마나 다행인가
파지들이 일구어내는 불빛에서 온기에서
내 생의 원본을 읽는다
(복효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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