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8일

배씨 이야기

배씨의 시조는 지타(紙陀)로 나타난다.경주출생인 지타는 촌장들을 모아 박혁거세를 신라초대왕으로 만들었다. 이에 지타는 총재태사에 오른후 배씨의 성을 받게된다. 하지만 이후 세경주배씨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왕건과 함께 후삼국을 통일해 고려를 건국한 현경이 중시조로 경주배씨의 후손들이 이어지고 있다. 고려개국 일등공신인 현경은 정일품벼슬인 문하시중에 오르면서 경주배씨는 중흥기를 누렸다.


이후 현경의 6대손 삼형제가 각각 분성파(원룡), 성산파(천용), 달성파(용운)로 나뉘어 분성배씨, 성산배씨, 달성배씨로 불리고 있으나 한핏줄이 분명해 경주배씨로 통합해 불리우고 있다.


이후 흥해파와 권산파도 분류해 다섯파로 보기도 한다.삼형제의 맏형인 원룡은 분성파의 파조가 된다.원룡은 고려조에 정3품벼슬인 병부상서에 올라 분성군으로 임명됐다. 분성은 현재 김해의 옛지명으로 김해배씨로 불리우기도 한다.

원료의 6대손인 극수(克壽)는 태종때 광주부윤(현재 시장), 제주목사를 지낸후 고향을 떠나 강진군 군등면 평덕마을에 생활을 시작한다.극수는 경주배씨에서 가장먼저 강진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난다.

극수의 후손들은 호례의 5명의 아들을 기준으로 각각 나뉘게 된다.세원의 후손들은 성전면 수양리에 20여가구가 생활하고 있고 세형의 후손들은 강진읍 동성리 일대에 10여가구가 살고있다. 또한 세정의 후손들이 완도군 고금면 가교리에 20여가구, 세언의 후손들은 해남읍 북평리에 10여가구가 터를 잡고있다.군동면 평덕마을에는 문중정각인 송헌재(松軒齎)가 놓여있다. 강진에서 처음생활을 시작한 극수의 호를 따서 만든 송헌재에는 매년 양력 5월5일 후손들이 모여서 제사를지내고 있다.원래 매년 음력 10월15일 제사를 지냈으나 외지의 후손들의 적극적인 행사참여를 위해 제삿날을 변경 한 것이다.평덕마을에는 경주 배씨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을입구에 위치한 두개의 바위인 군노암. 당시 유명한 풍수인 이신이 이곳을 지나다 바위를 제거하면 후손들이 더욱 번창할것이라고 말했다.이에 후손들은 한쪽 바위를 없애고 나자 그속에서는 파랭새 두 마리가 나와서 도암면 남창방향과 강진읍 목리방향으로 라라갔다고 한다. 이후 후손들에게 좋지않은일들이 생겨나자 후손 응철이 바위를 다시 복원해 현재의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다.

성산파는 둘째인 천룡을 파조로 한다. 성산파는 다른 성씨들에 비해 가장 많은 후손들이 번성했다. 시조인 지타는 신라개국을 도왔고 중시조 현경은 고려, 후손 극겸은 조선개국에 공신으로 자리했다. 극겸은 고려말 정국이 혼란하고 민심이 흐트러지자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했고 종일품인 벼슬인 숭록대부까지 올랐다.이후 후소닌 일학이 정5품 사조정락을 지낸후 완도 고금에서 생활을 시작했고 일학의 증손자인 진채가 칠량면 영동마을로 이주해 강진생활을 시작하게된다.진채의 아들 경용은 성균진사를 지냈고 세명의 아들을 두었다. 응규, 환규, 성규 삼형제는 효성이 지극하기로 유명했다. 삼현제는 헌종때(1840년) 부모가 한겨울에 열병을 앓자 각자 다리에 상처를 내 부모에게 피를 입에 넣어 위기를 넘겼다. 여기에 성산파에는 열녀도 빼놓을수없다. 성규의 처 창녕성씨는 삼년간 남편 병수발을 믿았고 남편이 죽은후 기일에 맞춰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고종(1874년)이 성산파에 삼강문을 내렸다.삼강문은 충, 효, 예가 모두 갖춰진 집안에 하사하는 것으로 현재 완도군 고금면 농상리에 소재하고 있다.


셋째아들 용운을 파조로 하는 달성파. 용운은 정이품벼슬인 평장사를 지낸후 달성군에 임명됐다. 이에 후손들은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가문을 지키고 나라가 어려울때 애국활동에 많은 활동을 보인다. 나주,영암등에 후손들이 기거하다 성종이 강진읍 월남마을에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후손들이 이어지고 있다.


배씨의 역사(歷史)


배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성씨의 하나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성씨의 연원은 신라시대 왕족인 박석김(朴昔金)의 3성(三姓)을 비롯하여 귀족층인 6성(六姓) 배(裵), 이(李), 최(崔), 정(鄭), 손(孫), 설(薛)이 시원(始源)이다. 신라, 고려, 조선에 걸쳐 3조원훈을 가진 성은 우리 배씨가 유일한 것이다. 삼조원훈은 신라 건국에 원훈이신 문양공(文讓公) 휘(諱) 지타( ), 고려 개국 원훈이신 무열공(武烈公) 현경(玄慶), 정절공(貞節公) 휘(諱) 극렴(克廉)으로, 극렴공께서는 이성계를 도와 시들어 가는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민생을 도탄에서 구하니 개국1등에 서훈(敍勳)되고 성산백(星山伯)에 봉작되었으며 첫 영의정이 되니 세 분은 세 왕조 건국에 원훈으로 모두 수상으로서 국가의 기반을 다졌다.


우리 성씨는 모두 무열공을 중시조로 하는 경주배씨의 갈래로서 같은 세계(世系)를 가졌다.


우리 성씨는 고려에 자주호국을 위해 항몽하신 민족적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삼별초(三別抄)의 지휘관 배중손(裵仲孫) 장군, 합단(哈丹)의 침입을 격퇴한 배정지(裵廷芝), 왜구와 싸워 혁혁한 전과를 낸 배구(裵矩), 배언(裵彦), 배극렴(裵克廉)의 활약 또한 빛난다. 또한 주장으로서 여진족 방어와 건주위(建州衛) 정벌(1467년)에 공을 세운 곤산군 배맹달(裵孟達), 임진왜란 때 항왜 호국하신 훙양 현감으로 이순신 장군을 보좌한 배흥립(裵興立), 경상도 유격장 배경남(裵景男), 의병장 배대유 등이 계신다.

우리 성씨는 절의(節義)와 학문에 있어서도 훌륭한 빛을 남겼다.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대해 분통함에 못 이겨 두문동에 들어가 세상을 등진 배문우(裵文祐), 배상지(裵尙志),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지킨 배을서(裵乙瑞)가 있다. 학문에도 우리 배씨는 태종때 배환, 배남, 배강의 삼형제가 문과에 오른 것을 비롯하여 45명의 합격자를 내었다. 그중 퇴계 제자인 임연재 배삼익, 모정 배대유, 남명 제자인 낙천 배신과 등암 배상룡, 금역당 배용길, 사계 제자인 농아 배승조, 안촌 배응경, 화당 배상유, 괴담 배상열 등을 배출함으로써 문무에 빛나니 한국에서도 유수한 성씨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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