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18일

샘을 버리고 우물을 판다

샘을 버리고 우물을 판다
찬송 : 34 336장
말씀 : 예레미야2:13 마태복음20:27~28

렘2:13 참으로 나의 백성이 두 가지 악을 저질렀다. 하나는, 그들의 생수의 근원인 나를 버린 것이고, 또 하나는, 그들이 전혀 물이 고이지 않는, 물이 새는 웅덩이를 파서, 그들의 샘으로 삼은 것이다
마20:27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마20:28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왔다."

주제 : 높아지려는 욕망 대신 낮아짐으로써 큰 사람이 됨.

어린이 내용 :
사칠은 이십칠이라고 우기는 사람과....사칠은 이십팔이라고 우기는 사람이.....서로 맞다고 심하게 다투었지.....나중에 원님이 판결을 내리는데....사칠은 이십팔이라는 사람이 죄인으로 지목되어 곤장을 맞았지....그 사람 너무 억울하여 원님에게 이유를 다시 묻는데....원님 왈...."사칠이 이십칠이라고 말하는 놈과 죽어라 하고 싸우는 네 놈의 어리석음이 죄다"

-. 에스키모족의 사냥 방법 가운데, 늑대 사냥의 아주 특이한 방법이 있다.
아주 예리한 칼을 거꾸로 꽂아두고, 그 칼에 동물의 피를 발라둔다. 그러면 늑대가 와서 그 피를 핥아먹는다. 핥아 먹다보면 늑대는 자신의 혀를 베게 되고, 그때부터 늑대는 자신의 혀에서 흘러내리는 자신의 피를 핥아먹게 된다. 그러나 늑대는 그것이 자신의 피 인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굶주린 자신의 배를 채우기에 여념이 없는 늑대는 계속해서 자신의 혀에서 흐르는 피를 자신이 사냥해서 얻은 자신의 먹이인줄 착각하고 핥아먹는데 최선을 다한다.
결국 그 늑대는 자신이 왜 이렇게 기운이 없고 피곤한지 영문도 모르는 채 결국 쓰러질 때까지 배를 채운다..... 그리고 결국은 서서히 죽는다. 성공을 갈망하는 인간의 모습은 본능에 가깝다. 그러나 그 성공을 원하여 하는 행동이 본능이라면 이 늑대와 똑같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따라서 성공이라는 본능을 충족시키는 방법은 본능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지극히 이성적이고 계획적이며 간간히 모든 과정을 체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장년 내용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마시려는 고난의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 착각에 빠져 있던 제자들은 그 영광의 잔을 마다할 리 없다면서 얼마든지 마시겠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미련 곰단지처럼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다. 막상 예수께서 잡혀가시게 되자, 그들 제자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끝내 예수님과 함께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제자들처럼 이익만을 추구하고, 높은 자리에서 위세를 떨칠 생각만 해 온다면 우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섬기기도 하면서 섬김을 받으려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제자들과 같은 그 생각은 예수님과 상관없을 뿐만 아니라, 역으로 더욱 멀어지는 길이다. 적어도 예수님을 따르겠다함은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을 여지없이 죽이고, 주님 가신 길을 따라 스스로 종이 되어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본을 따라 낮아져서 섬김을 잘 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교회 안에 직분을 주신 것은 더욱 효율적인 섬김을 위해서이다. 우리가 그 직분을 잘 감당할 때 교회는 주님의 몸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된다. 그러나 본문의 제자들처럼 교회의 직분을 높고 낮은 서열로 받아들일 때 교회는 세상보다 더욱 천박해진다.
모든 교회가 시작될 때는 은혜로 시작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날수록 분란이 생겨났다. 신앙생활을 오래했다고 생각하는데다, 스스로 크다고 생각하는 데서 교인들이 윗자리에 앉아 군림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화목한 교회는 오래된 교인일수록, 그리고 직분이 높은 교인일수록 밑가지로 남아 있다. 밑가지가 든든할 때 새로 등록한 교인들이 마음껏 봉사하고, 마음껏 헌신할 수 있다. 그런 교회야말로 살아 있으며, 세상을 안내할 수 있는 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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